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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인도, 신화로 말하다』 현경미 (도래, 2015)

인도, 신화로 말하다 - 8점
현경미 글.사진/도래


굴제국 황제가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며 만들었다던 타지마할. 이를 넘는 인도에 관한 이야기라고는 알고 있는 것이 전혀 없다. 대학 시절 수상쩍은 책을 읽다가ㅡ 인도에서 맨손으로 음식을 먹는 것에, 입보다 손으로 먼저 음식을 느끼기 위한 '사치 부리기'의 의미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전부다. 하지만 이보다 더 괴상하게도 나는 어릴 적부터 사찰이나 불구(佛具), 이슬람과 힌두 문화에 묘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도 집 밖에 나서 고개를 좌우로 한 번씩만 돌리면 예닐곱 개나 되는 십자가를 볼 수가 있는데,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십자 모양 네온사인을 보면서 정체를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알지도 못하는 지시를 받고 있는 것만 기분을 느껴 외려 그쪽에 반감이 들었던 것과 궤를 같이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부터는 팔이 두 쌍 이상 달린 힌두교 신들이 그렇게나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 아직도 브라마(Brahma, 창조주)인지 비슈누(Vishnu, 보존자: 영화 《아바타》의 모델이란다)인지 시바(Shiva, 파괴자)인지 꼭 맞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다만 재물을 관장하는 신 락슈미(Lakshmi)와 시바의 아들 가네슈(Ganesh)만큼은 확실히 알 수가 있고, 그 때문인지 이 두 신에 가장 흥미가 동했다. 부의 상징인 락슈미는 연꽃 위에 오른 풍만한 몸매의 여성으로 묘사된다. 락슈미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히 재물을 관장하기 때문인데, 단지 부를 가져다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게으르고 낭비를 하거나 겸손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모든 재물을 거두어 간다고 한다. 그러나 외양만으로 보자면 가네슈가 주는 강한 인상을 따라갈 수 없을 듯하다(개인적으로도 가네슈에게 더 흥미를 느낀다). 가네슈는 파괴의 신 시바의 아들인데, 시바가 파괴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 악업, 무지 등이다.(p.23)





이 파괴의 신의 아들인 가네슈는 일단 코끼리의 얼굴을 하고 있다. 물론 몸은 사람의 것인데 조그만 쥐를 타고 다니며, 인도 사람들은 풍요와 지혜의 신인 가네슈가 장애물을 제거하고 복을 준다고 믿는단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한쪽 상아가 부러져 있다.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를 받아 적기 위해 자신의 상아를 잘랐다는 전설 때문인데 신이 제 뼈를 잘라 필기구로 썼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희한하고 기묘한 일이다. 그런데 사실 어떤 문화(권)의 어떤 신(화)이건 사후세계와는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볼 때, 대개 그 이야기는 '이러하면 복을 받고 저러하면 벌을 받는다' 쯤이 될 거다. 특히 힌두교의 장례에서는 화장한 뒤 뼈와 재를 강물에 흘려보낸다는데 처음의 불[火]은 해탈과 해방을, 나중의 물[水]은 윤회와 재탄생을 뜻한다. 여기엔 아예 처음부터 인간 영혼이 이 두 가지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말을 끌어와도 죄를 범하기로 작정한 사람이 사후세계를 두려워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는 ①종교가 인간생활에 있어 별 효용이 없거나 ②종교의 교리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 이렇게라도 사회가 유지되거나, 이 둘의 논리 사이에서 언제나 휘청이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힌두교는 물론이거니와 각종 종교에 대해 이렇다 할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 나름대로 인간 삶에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면 그저 그걸로 됐다는 입장이다. 언제 어디에서건 대상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내가 힌두 문화에 대해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그 때문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는 그것이 이 세계에서 확인되지 않을 때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