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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사과에 대한 고집』 다니카와 슌타로 (비채, 2015)

사과에 대한 고집 - 8점
다니카와 슌타로 지음, 요시카와 나기 옮김, 신경림 감수/비채


를 맞는 사과, 쪼아 먹히는 사과, 잡아 떼이는 사과, 땅에 떨어지는 사과, 썩는 사과, 운반되는 사과, 소화되는 사과, 소비되는 사과, 사과라 부를 필요도 없는 사과……. 징그러울 정도로 사과를 고집하는 시인의 글이다(시 전문은 더 징글맞다). 시는 시인의 감정 표현을 넘어서 때때로 언어 자체에서 이어지는 연상과 상상, 결합, 해체, 조탁, 실험에 의해 깨지고 부서지기도 한다. 존 스튜어트에 의하면 서정시는 곧 엿듣는 발화이다. 우리가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어떤 이야기를 엿듣게 될 때, 우리가 전형적으로 보이는 행동은 발화자와 문맥을 재구성하거나 상상하는 것이다.(조너선 컬러 『문학이론』) 비단 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지만 그 대상이 운문이라면 한층 유달리 이런 자세를 보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텍스트 하나하나의 가리킴과 방향은 물론이거니와 발화자의 태도(혹은 성격)를 감상하고 상상하며 엿듣는 거다. 나는 시집에서 처음 언급한 표제작 「사과에 대한 고집」이 가장 마음에 든다(시집을 거의 읽지 않는 나로서 이유는 설명하기 힘들다. 어쩌면 그 때문에 마음에 드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이 시의 삼분의 일가량은 사과에 관한 묘사가 전혀 없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사과에 대한 모습이 나오긴 하나 그 역시도 어느 찰나의 사과를 그대로 나열한 듯이 무미건조할 뿐 처음과 별반 다르지 않다(반복적으로 읽다 보면 오로지 사과만 남고 아무것도 없게 된다). 시인에게 이런 취급(정의됨)을 받는 사과로선 불행할지도 모르겠다(정의된 순간 그 정의 자체를 증명해야 한다는 식의 어렵고 난해한 메커니즘은 모르겠으나 사과의 입장에 서면 자신을 지독히도 고집하는 자, 혹은 지독할 만큼 자신에게 충실한 자가 마냥 탐탁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뭐 그렇게 따지자면 이 세계에서 시인에게 선택되어 불행하지 않은 삶은 사는 대상도 없을 것 같긴 하지만. 이 양반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을 멍하니 기다릴 때가 많다고 밝혔는데, 그러면서 남의 눈에는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고도 썼다. 어딘가에서 귓결에 얻어듣기로, 작가란 가만히 있을 때야말로 진정으로 힘차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다니카와 슌타로도, 시인인 자신이 일반적인 노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 대답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혹 시인이 안개를 먹고 산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아한 마음을 품고 있다(어라,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시인은 밥이 아닌 안개를 먹는 건지도 모른다(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라도 있나?). 그렇기에 사과를 향한 집착도 보이고(「사과에 대한 고집」) 방귀 뀔 때 나는 소리도 정밀히 연구하는가하면(「방귀 노래」) 어느 때는 시 자체의 태생적 전말을 드러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는 거다(「2페이지 둘째 줄부터」).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시/시인의 그럴싸한 허무맹랑함도 받아들일 줄 안다. 그래서 내가 이 시집에 대해 고집을 부리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