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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미스테리아 창간호』 (엘릭시르, 2015)

미스테리아 1호 - 10점
엘릭시르 편집부 엮음/엘릭시르


구 말마따나 풍경화는 자연 경관이 살벌한 곳에서, 신문은 인간관계가 소원한 곳에서 발달한다든가. 한국 미스터리를 불모지, 척박, 혹은 '없다'는 부정어와 함께 일컫는 건 이런 이유에서일까? 현실이 팍팍하고 온갖 미스터리한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마당에 굳이 책에서까지 비일상의 미스터리를 찾아야 하느냐, 하는 거다. 그런데 영화판을 보면 그건 또 아니다. 심심찮게 몇 백만, 몇 천만 관객이라는 표현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렇다. 더군다나 '심심찮다'는 말은 이런저런 문학지가 등장했다 사라지는 저간의 광경에 더 어울릴 지경이 되었으니. 이런 만만찮고 녹록찮은 계란유골 같은 와중에 새로이 창간한 격월간 미스터리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 일단 만듦새는 '멋지다'는 형용사 하나만으로 충분히 멋지다. 특히 겉표지는 직관적다 못해 야시시하기까지 한 디자인을 취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바타유는 에로티즘을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라 했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와 야스이 도시오의 대담집 『밀실 입문』 연재분은 『유리 망치』의 에노모토를 상기케 하고, 한국 소설 속 '범죄의 낌새'를 조망한다는 꼭지 <집안의 괴물들>은 조정래가 자신의 중편에서 묘사한 '상상할 수조차 없도록 비싸고,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는 아파트'의 무시무시함을 떠올리게도 한다. 출판사 관계자들의 한국 미스터리에 대한 내밀한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법의학자의 사건 기록 들추기와 경찰서 출입 기자의 취재 비화 또한 흥미롭다. 확실히 한국 미스터리는 최근 들어 판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때마침 하늘의 도우심이런가. '장르'와 '순'이라 구분 짓는 한국 문학판의 수상쩍은 심보에 맞서 바로 그 장르문학을 다루는 잡지가 탄생한다는 것은('장르'와 '비장르'가 실은 더 어울린다). 게다가 이미 주화입마에 빠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매체들이 몇몇 있었으니 독자 된 입장에선 기대와 불안감이 동시에 드는 것이 사실이어서, 『미스테리아』가 들어올 적엔 보무당당, 나갈 땐 죽상이라는 3D 아르바이트와 동의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러면서도 장르문학의 옐로페이지가 되는 것도 원치는 않는데, 일상의 미스터리를 자유롭게 탐색하겠다는 편집자의 변이 반가운 것은 앞으로 잡지에 싣게 될 다종다양한 내용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런 소망이 함량 미달의 턱없는 바람이었음이 밝혀질지, 신통방통하게도 대법원 확정 판결만큼이나 일호의 가차 없이 들어맞을지는 조금 더 두고 볼 노릇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