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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장정일의 공부』 장정일 (RHK, 2015, 2판)

장정일의 공부 - 8점
장정일 지음/알에이치코리아(RHK)


정일을 읽어 본 거라곤 시집 『햄거버에 대한 명상』뿐이다. 그의 공부 책을 읽는 것도 거의 십 년 만에 출간된 개정판으로, 어딘지 모르게 나는 장정일로부터 '도망중인 사나이'인 것만 같다(실제로 그의 작품 중 「도망중인 사나이」라는 제목의 시가 있는데, 내가 쓴 맥락은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장정일이 꿈꾸는 인문과 내가 꿈꾸는 인문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여기는 인문 또한 매한가지일는지도. 「존경받던 어른이 어쩌다 우리의 실망을 사는 경우는 바로 '기계적 중립'을 취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서문에 적어놓은 말이다. 중용? 좋다. 어디에서든 중간만 하라, 모나게 튀지 말고, 앞서가지도 말며, 뒤처지지도 말아라. 어르신들의 현명한 가르침이다. 아니, 현명한 가르침이었다. 다시 한 번 중용이라고? 좋다, 좋다. 그런데 흑과 백 사이의 회색분자며 기회주의자라니? 얼토당토않다. 외려 흑과 백에 있는 자들의 정체가 아리송할 때가 더 많은 건 왜일까(이 세계를 흑, 회, 백으로 딱 잘라 삼등분해서 세 개의 자루에다가 담을 수 없을지라도). 그래서 장정일의 '공부'다. 내가 서서 발을 딛고 있는 곳과 내 입을 통해 말해진 것을 나조차도 알지 못한 채 강 한복판에 있다면 이것도 중립은 중립이다. 그런데 앞서 인용한 '기계적 중립'이다. 그러므로 다시 '공부'인 거다. 하다못해 남을 응징하거나, 내 처지를 변명하거나, 무언가의 뻔뻔함을 타파하거나, 과거에 머무르고 싶지 않거나, 어느 쪽이건 공부다. 행동하는 철학자가 없다며 우는소리하기 전에 일단 공부다. 물론 장정일의 때로는 수상쩍은 공부가 나나 우리에게 가시적이고 즉각적인 명제를 던져주지 않을 공산도 있다. 탱크같이 밀어붙여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계적이고 무지한 중용'을 고민하도록 만들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지식과 사유의 덫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장정일의 공부에 대한 절절한 노력은 우리를 부지불식간에 뾰족한 가시 위에 앉게끔 유도한다. 세모꼴 지붕 한가운데에 달걀을 얹어놓으면 어느 쪽으로든 굴러가는 것처럼. 균형을 잘 잡아 그대로 있으면 또 어떤가. 그쯤 되면 이미 수많은 고민을 한 끝에 중용을 택하기로 마음먹은 것일 텐데. (다만 깨지지만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