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기지 만들기』 오가타 다카히로 (프로파간다, 2014)

· 책_롱 2015. 7. 13. 13:07

비밀기지 만들기 - 8점
오가타 다카히로 지음, 임윤정.한누리 옮김, 노리타케 그림/프로파간다


화 『명탐정 코난』에서 본 기억이 있다. 멈춰있는 벽시계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내려가면 그 아래 흩어진 트럼프가 있고, 유일하게 핀으로 고정된 카드의 무늬(아마도 스페이드였을 것이다)를 따라가면 또 다른 단서가 있어서 결국엔 누군가가 숨겨놓은 재미난 것들을 발견한다는 에피소드. 책에서 비밀기지라고 거창하게 부르고는 있지만 사실 비밀이라는 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거다. 세월이 흐르면서, 특히 도시에 현대적 건축물이 많아짐에 따라 공략할 수 있는 비밀스런 장소가 마땅하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비상금을 숨기기도 하며, 자물쇠 달린 상자를 구해서는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넣어 놓는가하면, 학교 창고 어딘가에서 몰래 빨간책을 공유하기도 한다(때때로 거기에서 오는, 그러니까 나만이 혹은 나와 몇몇의 친구들만이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매료되어서 즐거움을 느낀다). 사탕이 들어있던 네모반듯한 깡통에다가 어린 시절의 물건을 담아 묻은 뒤 십수 년이 지난 후에 땅을 파내 친구들과 파안대소하는 사람들이 오늘날 얼마나 있을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타임캡슐을 비롯해 아파트 주차장 부근의 어두침침한 공간, 퀴퀴한 다락방, 체육관 창고, 집 근처 공터에서는 아직도 어린아이들이 저들만의 비밀기지를 만들어 즐거이 놀고 있으리라(정말이지 그랬으면 한다). 『비밀기지 만들기』의 첫머리에선 '세 가지 간(間)'을 언급한다. 하나, 공간(空間). 둘, 시간(時間). 셋, 친구(仲間, 일본어로 동료, 친구라는 뜻). 도시에서의 공간 찾기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이 짬을 낸다는 것 역시 쉽지 않고, 같은 이유로 자신의 또래와 어울리는 것도 시간이 갈수록 점점 어려워지는 것만 같다. 책에서는 아주 작은 비밀기지부터(집 안의 매트리트 틈새, 다리 밑, 폐허 등) 아예 사람 몇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물까지 다루는데, 그보다 저자 오가타 다카히로라는 양반이 설립한 일본기지학회라는 단체가 흥미롭다. 홈페이지에 접속하니 2006년에 회원이 120명에 달했고 각종 워크숍이나 앙케트, 전람회 등의 활동을 한단다(회칙도 있는데, 기지학회 회원은 기지에 대해 말할 때 자연스레 미소 짓는 사람, 무엇을 보아도 '기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을 좀 더 재미있게 살아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데 그것은 이미 이 책만 가지고라도 많은 부분을 달성한 듯싶다. 이렇듯 가전제품을 싸고 있던 골판지나 빈 페트병만으로도 얼마든지 비밀스런 작업이 가능할 텐데, 그런데, 그런데, 얼마 전 SNS에서 접한 누군가의 멘트가 생각난다. 텔레비전 방송이 ‘사람들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욕구를 보여준다는 거였다. 말인즉슨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우리에게 집을 바꾸는 걸 보여주다가, 어딘가에 나가 하룻밤을 자며 노는 것을 보여주다가, 결혼하는 것을 보여주다가, 애 키우는 것을 보여주다가, 이제는 집에서 밥 먹는 것까지 보여준다는 사실이었다. 들판에 자란 잡초를 묶어 어설픈 덫을 만들거나 골판지 상자를 접어 구멍을 뚫은 뒤 멍하니 밖을 내다보는 일이 점점 없어진다는 이야기일까? 그럼 앞으로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노는 법'을 알려줘야 할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쓰레기라도 생각했던 그 물건이 근사한 나만의 비밀기지로 탄생할 때,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작업물이랍시고 만들었던 걸 들켜 혼났을 때, 총 공사비 0원의 말도 안 되는 건축물을 완성했을 때, 그때 까무러칠 듯 좋아했던 기억이 그저 기억으로만 남아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안타까운 기분이 든다.







이미지 출처: 출판사 홈페이지 http://graphicmag.co.kr/wordpress/?p=1115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