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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불평등을 넘어』 앤서니 앳킨슨 (글항아리, 2015)

불평등을 넘어 - 8점
앤서니 앳킨슨 지음, 장경덕 옮김/글항아리


번 당한다. 사회 정의를 고취하거나 불평등을 타개하고자 이런저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매번 그런 일은 무위로 그치고 나 자신조차도 종종 그럴 마음 또한 없어 보인다. 그런 와중에 일단 책의 첫머리에서부터 약간 놀라게 된다. 기회의 불평등과 결과의 불평등.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건 다들 동의할 텐데, 여기서 결과의 불평등이 간섭하게 된다. 예컨대 똑같은 출발선에서 경기를 시작하지만 결과에 따라 서로 다른 상이 돌아간다는 것. 또 특히 어떤 개인이 무료 급식소에 죽을 서게 된 것이 환경 요인 탓인지 노력 부족 탓인지 따진 후 그에 따라 수프를 나눠준다는 조건은 도덕적으로 혐오스럽다는 거다. 과거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의 '3명 도와주기'가 결코 현실성이 없다는 데에 동의했지만 경기 결과나 급식소의 차등 시상과 조건부 무료의 '결과의 불평등'에 또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번 당한다고 느끼는 것은 이러한 정의와 불평등 구조에 관한 책을 읽을 적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돌아서면 곧 공허한 외침이라는 현실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윤이 가파르게 늘어났다고 해서 노동자의 임금 또한 그에 따라 비슷한 비율로 상승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개인이 일생 동안 유지한 부(富)가 사회 전반에 걸쳐 환원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가족과 세대에만 대물림되었기 때문이며, 국가의 각종 경제 지표 상황이 좋아졌음에도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그대로이거나 이전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에 몰렸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1퍼센트와 99퍼센트의 대립이 심화되고 있는 것도 매한가지다(따라서 앳킨슨이 자본소득의 역할과 소유권의 균형에 대해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고 있긴 하나 책을 덮은 뒤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소름이 끼친다. 기업 이익의 상당 부분은 재투자를 위해 유보되지 않던가? 누진 과세와 최고 세율이 언제 우리의 마음에 들었던 적이 있었나?). 빠르게 결론으로 가자면 앳킨슨은 불평등의 크기가 줄어들기를 바라며 말한다. 우리가 경제적 결과의 불평등을 줄이면 이는 민주사회의 핵심적인 특징으로 여겨지는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다. 범죄와 질병 같은 여러 사회적 악은 오늘날 사회의 매우 불평등한 특성에 기인한다. 이런 것들은 빈곤과 불평등 수준을 낮춰야 할 수단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극단적인 불평등은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두려움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앳킨슨처럼 지금과 같은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은 본질적으로 좋은 사회의 개념과 맞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유로 염려하든 간에 질문은 그대로다…….(p.418) 그가 덧붙였듯이 이 책은 공상적 이상주의의 실행 방안은 아니다. 그러나 '불평등 회귀'는 언제고 또 올 것이며, 심지어 내가 불평등한 기회와 결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활인이라 나는 생각한다). 일자리 보장이 우리를 가난에서 탈출시킬 수 있을까? 소득 격차의 확대에 따른 소득 불평등을 확고하게 인지할 수 있을까? 단순히 빈곤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으로 불평등에 대한 염려를 불식시킬 수 있을까? 『불평등을 넘어』는 크게 어렵지도 않고 많은 전문가적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앳킨슨이 미래를 낙관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소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도운 3명의 사람들이 각각 또 다른 3명씩의 누군가를 도와준다고 한들, 그 이전에 나부터 다른 사람에게 먼저 도움을 받는 일이 선행되어야만 '3명 도와주기'가 시작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에서다. 달리 말하면 불평등을 불평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기득권층 또한 많고 굳건하다는 우려에서일 텐데, 앳킨슨의 여러 가지 제안들이 실질적인 개혁과 진보적인 방향성을 띠기 위해선 분명 행동하려는 욕구와 정치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ㅡ 불평등과 정치의 상호관계는 결정적으로 중요하다.(p.425) 그가 말미에 써놓은 19세기 미국 상원의원이었던 마크 해나의 말을 들으니 다시금 어깨가 축 처지긴 하지만 말이다. 「정치에는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째는 돈이고 두 번째는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