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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마사 & 겐』 미우라 시온 (비채, 2015)

마사 & 겐 - 8점
미우라 시온 지음, 홍은주 옮김/비채


년의 플로베르는 어느 편지에 이렇게 썼다. 「오! 내가 늙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죽음이 가까워졌음을 느끼는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영혼의 증거인가! 나의 육신은 쇠약해지고, 나의 사고는 성장한다. 나의 노년에 일종의 개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시몬 드 보부아르, 『노년』, 책세상, 1994) 구니마사와 겐지로는 어느 쪽일까. 특히 구니마사는 '망설이고 힘없는 노년'의 전형으로, 젊은 사람들로부터의 비웃음의 대상이고 자신을 키워준 사고방식과 문화에 이제는 거꾸로 당하고 있으며 늙고 지쳐 가족들에게서 팽(烹) 당한 뒤 멸시받는다. 겐지로는 일반적이지는 않으나 짱짱한 정신상태로 무장한 노인이고. 둘의 차이는 '꼰대스러움'의 정도인데,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다루는 방법에서 구니마사와 겐지로의 사고방식이 드러난다(둘 다 겐지로처럼 파락호 같은 남자들이었다면 일흔을 넘기기 전에 양쪽 모두 저세상으로 갔으리라). 그러나 어느 하나가 요통으로 쓰러져 움직이지 못해도 단박에 달려와 줄 사람은 죽마고우뿐이고, 결혼을 위해 야반도주를 획책하는 것에도 도움을 줄 사람은 죽마고우뿐이며, 때때로 심술궂게 타박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죽마고우 그들뿐이다. 그리고 두 인물이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들이 더 많은 노인이라는 설정이 소설을 이채롭게 만든다. 퇴직한 은행원과 전통 비녀를 만드는 직인의 이야기, 구니마사와 겐지로라는 양반들은 한량처럼 노년을 보내고 있지만 그들이야말로 그들 세대를 대표할 수 있는 평균적 인간이다. 오늘날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입장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체득할 수 있는 경험이라는 개념이 약화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기술이 발달하고 매일같이 새로운 물건이 쏟아지는 지금 어딘지 모르게 경험과 지식 혹은 지혜는 날이 갈수록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부수적인 것으로 추락한다. 젊은이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열등한 존재이고 모든 일에 서투름을 느끼도록 만든다. 그렇게 해야만 자신들이 지휘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가끔 병원에 입원함으로써 살아갈 의욕을 얻을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같은 연배의 사람들과의 병실 생활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조직 문화를 경험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그치지 않는 것이, 병실 밖 세상은 줄기차게 그들을 향해서 젊은 사람들의 부양을 받아야 하는 인간이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마사 & 겐』은 소위 '요절복통', '좌충우돌'과 같은 말처럼 건강한 웃음을 자아내는 소설이다(한편으론 그들이 살아온 이력을 끼워 넣음으로써 애잔하게 보이기도 한다). 얼마 남지도 않은 머리털을 시뻘겋게 물들이는 노인네라니, 이런 작자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모쪼록 구니마사 씨, 겐지로 씨, 오래오래 사세요(주제넘게 명령조로 말하고 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