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찰스 부코스키 (모멘토, 2015)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 - 10점
찰스 부카우스키 지음, 설준규 옮김, 로버트 크럼 그림/모멘토


코스키에 비하면 케루악은 멀끔히 차려입은 젊은 청년일 텐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삶은 조금이라도 더 살아본 자가 그 맛을 아는 법이라고 해야 할는지 모를 일이다. (참 순탄치 않은 번역이건만 부코스키의 글이라 참는다ㅡ 십 년도 더 전에,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 - 그 첫 번째』가 출간된 후 두 번째 권이 도통 모습을 드러낼 생각을 않는 와중에 나온 것이라) 물론 이런 식으로 악다구니를 부리는 멍청한 노인네는 지금까지 본 적도 없고 그다지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도 없으나, 꼰대스러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일종의 도취감을 자아낸다는 점에서만큼은 언제나 부코스키는 내 영웅으로 남아 있으리라(부코스키(치나스키)와 레보스키는 언제나 옳다). 언젠가 그가 마지막으로 한탕 크게 벌고 나서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결코 그런 마음을 먹은 적이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최상의 독자, 최상의 인간이란 자신 앞에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보답하는 자들 ㅡ 작가는 글만 잘 챙기면 그만이고 독자가 있어서 발표 지면이 생긴다는 것 말고는 독자에게 빚진 것도 없다(p.9) ㅡ 이라더니, 오늘 다르고 내일 다른 심약하고 성마른 인간의 전형이 바로 부코스키가 아닌가 싶다. 독자들이 책을 사고 그 돈이 주머니에 들어오면 금세 경마장에 처박는 자가 바로 그 아니던가ㅡ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한 인생? 땡전 한 푼 없이 곧 죽어도 낭만? 글쎄, 그러든지 말든지, 부코스키는 진짜 어마어마한 돈이 있었다면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전전긍긍할 인간이다. 그가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든 아니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고,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모를 소설들을 쓰든 말든 내 쪽에서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단지 그의 사고방식, 사물과 사람을 대하고 자신에게 벌어진(질)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 대개 태어나서 죽기까지 수십 년을 살 텐데 이런저런 다종다양한 생각들도 필요하지 않겠냐는 자세, 그걸 좋아할 뿐이다. 「곧 죽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난 그게 참 낯설게 느껴진다. 난 이기적인 놈이라 그저 글을 계속 더 쓰고 싶을 뿐이다 (...) 하지만 사실 내가 얼마나 더 계속할 수 있을까? 마냥 계속하는 건 옳지 않다. 염병, 죽음은 연료 탱크 속 휘발유다. 우리에겐 죽음이 필요하다. 내게도 필요하고, 네게도 필요하다. 우리가 너무 오래 머물면 여긴 쓰레기로 꽉 찬다.」(p.42) 좋아, 좋아. 여전히 마음에 든다. 이렇게, 또 저렇게(좋게 말해 변변찮은 미친 작자). 여전히 탈진한 사람과 대화하는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