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문학과지성사, 2015)

· 책_롱 2015. 10. 4. 12:49

몸의 일기 - 10점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문학과지성사


체를 관찰하고 기록한다. 때로는 치밀하기도 하고 가끔은 놀라기도 하면서. 몽정을 하고, 울퉁불퉁한 어쭙잖은 근육이 생겨나고, 등고선처럼 쭈글쭈글한 주름이 만들어진다. 별일 없는 한 남자의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의 일기. 죽기 전 마지막 날의 글을 마친 뒤 딸에게 남긴다는 가증스런 붙임으로 자신의 변을 다한 아버지의 평생의 진술서다. 벌거벗은 또래 여자애의 옆에 누웠음에도 전혀 발기되지 않았던 갓 열아홉이 된 소년. 일생의 반려자를 만나 비로소 각종 자세를 취하며 도시 이곳저곳에서의 섹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스물여섯 청년. 온종일 활기 넘치는 아이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한 서른셋의 아버지. 그리고 친구들이 이 세계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기 시작한 늙수그레한 노인네. 말 그대로 인간 한 개(個)의 일기. 그의 기록. 몸이라는 장치가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반응하는지를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열한 인간 탈바꿈의 진열장. 머리 위에 작은 개구리를 달고 태어난 남자가 있었다. 한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그는 어느 날 출근길 외과로 향했고, 의사의 질문에 남자가 아닌 개구리가 말한다. 별것 아니에요, 선생님, 제 엉덩이에 작은 종기가 하나 났는데 그게 이렇게 커져버렸지 뭐예요.(p.253) 내 몸의 주인은 온전히 나라고 불리는 사람의 것인지? 더도 덜도 말고 모자람 없이, 나란 인간이 내 육체를 빌린 세입자인지 아니면 이 몸뚱이가 내 존재를 발현시키기 위해 그저 간당간당 매달려 있을 뿐인 것인지? 아무리 연마한들 내 몸은 종국엔 녹이 슬고 힘없이 늘어질 것이며 곳곳이 썩기 시작해 앙증맞은 검은 버섯들을 피워낼 터다. 역자가 정리해놓았듯 내 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상황들ㅡ이명, 건강염려증, 동성애, 구토, 티눈, 월경, 용종, 불안증, 성 불능, 불면증, 몽정, 자위, 비듬, 코딱지, 현기증, 악몽, 건망증, 노안, 몸을 긁는 쾌감, 똥의 모양, 코피, 설태, 전립선비대증, 수혈, 치매, 기타 등등ㅡ이 슬슬 좀먹어가는 거다. 그것들은 아마 내가 태어났던 순간부터 전원 버튼을 켠 채 시작되었을 테고.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