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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명리』 강헌 (돌베개, 2015)

명리 - 8점
강헌 지음/돌베개


양오행은 운동 능력과 에너지를 갖는 기(氣)이자, 사물을 분류해 사물 사이의 상호관계를 규정한 원리이다.(『중국 사상 문화 사전』 미조구치 유조 외, 책과함께, 2011) 그러니까 밝음과 어두움, 단단함과 부드러움처럼 대립하는 속성으로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두 기(二氣)인 음양과 각각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 다섯 물질 중의 하나인 오행이 얽히고설켜 사물의 생성과 소멸을 포함한 모든 변화를 관장하는 작용인(作用因)이자 질료인(質料因)인 셈이다. 강헌이 쓴 『명리』는 명리학을 잠시 개괄한 뒤 바로 이 음양오행에서 시작한다. 대개 알다시피 명리학은 그간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운명의 이치'에 관한 학문이라는 점에서일 것이다. 삼라만상의 작동과 이 세계 움직임의 이치를 헤아리는 학문이라고 해도 될 것을, 거기에 '운명'이란 단어가 끼어듦으로써 흡사 미신과도 같이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강헌의 말대로 명리학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점술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는 나 자신조차도 명리학과 점술의 불분명한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겠으나, 명리학이 일종의 숙명론이라기보다 '관계의 해석학'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말 앞에서만큼은 확실히 미신이나 잡설이 아닌 하나의 학문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사주를 본다, 점을 본다, 이런 사람들을 찾아간들 그들이 내 지나온 삶과 앞으로의 삶을 과연 온전히 예언해줄 수 있을는지('예언'이란 단어조차 사용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만 그들은 내 사주를 토대로 그것을 조언해줄 뿐인 거다. 바로 내가 명리학을 알지 못하니 명리학을 공부한 그들의 입을 통해 전달받는 것. 그런데 우습게도 강헌의 글을 읽다 보면 당장 누구라도 내 앞에 와 자신의 사주풀이를 해달라는 요구를 받아도 쉬 혀를 놀려 이런저런 말을 쏟아낼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가 공부하고 정리해놓은 명리와 명리학에 대한 이론은 쉬운 입말과 다양한 도표를 이용해 명리(학)를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조차 선선히 받아들여진다(물론 그럴 목적으로 이 책을 썼을 터다). 강유위의 『강자내외편(康子內外篇)』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고 한다. 「사람은 음양의 기를 품수 받아 태어난다. 욕망, 기쁨, 즐거움, 슬픔은 모두 양기의 발출이고 노여움, 두려움…… 모두 음기의 발출이다 (...) 음양은 순환 상승해서 끝나는 일이 없다.」 자, 여기에 (많든 적든) 51만 8,400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천간의 열 글자(갑, 을, 병, 정……)와 지지의 열두 글자(자, 축, 인, 묘……)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경우의 수. 과거 한곳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상황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51만 가지가 넘는 경우의 수, 거기에 내가 살아가면서 만나고 대면할 수백수천의 사람들(바로 위에서 말한 '관계의 해석학'이다). 강헌은 말미에 이렇게 썼다. 명리학은 미래가 아닌 현세의 학문이라고. 그러니 『명리』를 읽고서 내 두 다리를 점집으로 달려갈 것에 사용할 것이 아니라 존 A. 셰드의 유명한 문장에 적용시키고 볼 일이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배는 안전하다. 그러나 배는 묶어 두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