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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위대한 공존』 브라이언 페이건 (반니, 2016)

위대한 공존 - 8점
브라이언 페이건 지음, 김정은 옮김/반니


냥꾼과 동물 사이의 교감이라니. 오늘날 그런 것이 가능키나 할까. 동물과 인간이 '같은 세계'를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때, 지배와 피지배가 아닌, 사육과 가축화가 아닌 '같은 세계' 속에서 얽혀있었을 때, 그때의 동물과 수렵인의 삶의 방식이라면 그들끼리의 교감 또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이 쉽게 사냥할 수 있는 동물은 점차 늘어났고, 그 어리고 자그마한 동물이 사냥감 혹은 일종의 가축이 되어갔으며, 동시에 동물들은 인간의 울타리 안에 머물며 짧게나마 포식자로부터 보호받았을지도 모른다ㅡ그리고 동물은 인간에게 잡아먹히거나 그들의 짐말이 되어 새로운 역할을 떠안게 된다. 사냥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동물들은 제의의 희생물, 가축, 식량, 짐꾼, 피실험자라는 다종다양한 배역을 맡으며 지금까지 지내왔다. 인간의 손에 길러지면서 자신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새끼를 낳아야만 하는 것은 물론이다. 책은 소, 당나귀, 말 등 인간과 가까워진 동물들을 이야기하며 그들과 인간과의 공존에 대해 말한다. 때문에 '숭배에서 학살까지'란 부제는 어떤 의미에서 뜨끔하다(마지막 장의 소제목 '학대 혹은 사랑'과 같은 의미일까). 페이건은 말한다. 인간과 동물 사이의 유대감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사회규범과 덧없는 유행에 끊임없이 휘둘리고 있다고. 동물에 대한 이중적 감정(애완동물로 기르기와 식용 혹은 사냥)은 엄청난 빈부 격차와 함께 19세기 사회에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고. 하지만 이는 21세기인 지금도 유효하다. 더욱이 매체의 발달로 동물이 겪는 학대는 과거보다 더 자주 우리를 놀라게 한다. 동물끼리도 생태계의 피라미드를 형성하며 저들끼리 죽고 죽이는 관계를 성립해 나가는 마당에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어째서 이상하게 보이는 경우가 존재하는가. 인간은 먹기 위해, 여가를 즐기기 위해, 몸을 치장할 물건을 얻기 위해 다른 동물을 죽인다. 수천 년 동안 인간과 다른 동물을 괴롭히고 죽여 왔다. 곰이나 사자를 야만스러운 포식자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인간이야말로 진짜 학살자다.(p.373) 동물의 이익이 반드시 인간의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며 반대로 인간의 이익이 동물에게는 해가 될 수 있다. 페이건은 서두부터 우울하게 시작한다. 현재 인간은 대부분의 동물을 종처럼 부리거나 먹거나 착취하고 있는데, 도덕적으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이 과정을 계속해야만 하느냐고. 그러면서 덧붙인다. 그 원인이 된 배경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해결책은 아직 없다고 말이다. 책을 덮은 지금 동물과 인간의 이상야릇한 공존에 대해서는 흥미롭게 읽었으나 역시 그 문제를 떠올려보면 대체 해결의 실마리라는 것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뒤미처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