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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네덜란드 살인 사건』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화살처럼 살을 가로지르는 전기. 눈꺼풀에 어른거리는 찬연한 무지개. 두 귀에 감기는 거품 같은 음악. 그것은 오르가즘이어라.」 ㅡ 아나이스 닌(Anais Nin)의 말이다.


라이벌(rival)의 라틴어 어원을 보면 ‘다른 사람과 같은 강물을 사용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매력적인 파트너 한 명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라이벌들, 그것도 내일이 없는 기항지의 매력을 두루 경험한 일등 항해사였고 자그마한 요트도 한 척 가지고 있었던 ㅡ 여자에 탐닉하고 영어와 독일어에 능통하기도 한 ㅡ 콘라트 포핑아를 사이에 두고서(질투라는 것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려 주는 지표의 성질만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불안정한지도 알려 줄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또 인문학적 연구에서 어느 정도 이끌어낸 결론 중의 하나는 ㅡ 네덜란드인들은 키스, 포옹, 춤추기 정도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거였다. 그런 문화의 나라 네덜란드가 이 소설의 무대다. 심농이 오스트로고트를 타고 델프제일 항에 다다랐을 때 보았던 분홍빛 도시가 아닌 핏빛으로 물든 살인 사건의 현장이었다는 것이 다르긴 하지만. 바로 앞선 시리즈 6권 『교차로의 밤』에서처럼 사람들을 줄지어 세우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주변인들을 모아 사건 현장을 그대로 재현해 본다는 것이 낯설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표현되고 있다. 모든 것을 단번에 꿰뚫는 천재적인 추리력보다는 사람들과 부딪히며 받는 감정에 기인한 이야기의 흐름이라서, 본문의 제9장(「재구성」)에 이르렀을 때는 누군지도 모르는 범인 옆에 앉아있는 것만 같은 초조함과 지루함마저 느껴진다.


글쎄, 처음부터 남녀의 애정 문제가 얽혀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암시되어 있긴 하지만 위 아나이스 닌의 말처럼 오르가즘은(어떤 의미에서든) 일탈을 꿈꿀 때 그 존재 가치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는지? 물론 인물들은 굉장히 평범하지만 사회교육이나 통념에 의해 내부의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도록 제어하며 살고 있다고 본다. 아니면 사람이란 것은 한 꺼풀 벗기면 으레 모종의 드라마를 갖고 있기 마련인가? 심농 스스로가 그의 유일한 관심은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한 걸 보면 심농의 욕구도 본능적이며 심농의 인물들도 본능적인 욕구를 ㅡ 『네덜란드 살인 사건』에서는 질투를 ㅡ 가지고 있다. 암소 치는 베이트예, 납작 가슴의 아니, 유난히 붉은 얼굴빛의 오스팅, 울보 코르넬리위스를 비롯, 대사 한 마디 없이 죽은 상태로 등장하는 콘라트 포핑아까지. 모든 범죄에는 여자가 끼어 있기 마련이라지만 그렇다고 남자 없는 범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짚고 넘어갈 것은, 마지막 장에서 매그레가 암소 치는 아가씨와 조우했을 때 그녀가 던진 마지막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