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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사물의 안타까움성』 디미트리 베르휠스트 (열린책들, 2011)


대면부터 왠지 세풀베다(Luis Sep úlveda)의 덥수룩한 외모를 상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이거야말로 ‘외모의 안타까움성’이 아니겠나). 그리고 나는 이 작품에 또 하나의 타이틀을 붙여주기로 했다. 패트리셔 맥거의 『피해자를 찾아라(Pick Your Victim)』에 버금가는 ‘가족을 찾아라’로 말이다. 연못 속으로 오줌발 날리기 시합을 벌이던 어린 날의 디미트리와 마찬가지로, 그의 아들 역시 고속도로 주유소 화장실에서 변기 물에 빠진 꼬마 오리 노래를 꽥꽥 불러 대며 오줌 줄기를 갈기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정말로 아름다운 부자지간이다 ㅡ 제기랄,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한단 말인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오롯이 체득되어 몸이 먼저 반응하고야 마는 안타까움의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가족. 장레식장에서 꺼이꺼이 울며 제 할 말은 다 하고야마는 그런 마녀 같은 속 보이는 보송이들 말고, 목에서 가래가 끓어 나오듯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아픔에 도저히 그 슬픔을 슬프게 표현해낼 수 없는, 그래서 닭똥 같은 눈물 하나만 뚝하고 흘려버리고 끝내는 그런 진술. 일전에 내가 이 작품을 두고 헤게만의 『아홀로틀 로드킬』과 바타이유의 『지옥 만세』를 버무려 시럽을 약간 넣은 것 같다고 했더니, 누군가 『지옥 만세』와 비교되다니 솔깃하다고 했다. 나는 즉시 그처럼 악마적(!)이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읽다 보니 내용 면에서 그것을 뛰어 넘을지도 모르겠다, 일단 그것보다 읽기는 수월하고 바타이유보단 친절한 편이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그런데 웬걸, 바타이유의 쏟아지는 메타포의 분절성과는 차원이 다르며 비교하기가 어렵다. 성질이 전혀 다르므로. 바타이유를 영국산 우울록이라고 한다면 베르휠스트는 보헤미안의 폴카였다. 아니면 서정적 폭력과 맥주거품, 그것도 아니면, 본문에도 나오는 로이 오비슨의 멜랑콜리라고 하든가. 불쾌하고 더러운, 그런 멜랑콜리함(나는 ‘담 담 담 두비두 아’보다는 ‘오 오 오 오오오 아’ 하는 부분을 더 좋아하지만). 사회적 존경은커녕 멸시받지나 않으면 다행인 베르휠스트 가족 중 하나인 디미트리가 소위 ‘문화인’이 된 것은, 베르휠스트들의 입장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을 격이다. 그러나 어쨌든 그도 자신의 이름에 베르휠스트를 붙일 수 있는 일원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물론, 베르휠스트라는 명찰을 바통처럼 물려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사물의 안타까움성』에서 ‘베르휠스트’라는 말은 그들의 삶의 철학, 살아가는 방식, 레이트베이르데헴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와 동의어이다. 따라서 마피아(Mafia)가 원래 ‘뛰어난, 남자다운, 훌륭한’의 뜻으로 사용되었던 것과 같이, 베르휠스트(Verhulst) 역시 ‘용감한, 리얼한, 레이트베이르데헴적인’의 의미와 마찬가지이다 ㅡ 하나를 덧붙일 수 있다면 ‘안타까운’ 정도가 되겠지. 그래서 이 베르휠스트의 베르휠스트식 이야기가 역자와 편집부에 의해 ‘안타까움성’이란 단어로 옮겨졌는지는, 디미트리가 치매에 걸린 할머니에게 윙크했을 때 그녀가 부르는 ‘보송이 송’이 슬프고 안타까웠던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