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콧수염』 엠마뉘엘 카레르 (열린책들, 2001)


대인은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행복해 보이기 위해서 사는 게 아닐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면 ‘그’는 완전히 정신병자에 미치광이가 되고 소설 자체도 무색해질 우려가 있으므로 위와 같은 논리로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므로 자신의 페르소나로서 ‘인간의 증명’을 꾀하려는 이와 그를 둘러싼 주변인들과의 드잡이에서 철저히 난자당하고 잠식되는 ‘콧수염 있는 인간’의 로직이 ‘콧수염 없는 인간’의 로직으로 변환된다는 쪽에 무게감을 두어야 한다. 『콧수염』이, 드러나지 않고 잠복해있는 행위와 시각작용을 공작적 인간(homo faber)으로 우스꽝스럽지만은 않게 표출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럼 이 공작적 인간이 만든 도구는 비극에 이르는 뼛조각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으로 인해 긴장완화와 살아있다(죽어간다)는 의식, 평정을 창조해냈으므로. 그래서 『콧수염』의 결말도 세네카식 회화처럼 그려진다. 이것이 루쉰의 「광인 일기」가 될지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비유가 썩 적절치 못한 측면은 어쩔 수 없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당신 미쳤어’를 ‘그녀는 돌았어’로 맞받아치던 그의 코웃음은, 그를 향해 기꺼이 내줄 그녀의 벌어진 호른 안에 혀와 손을 넣는 대신 자신의 가면에 면도날을 박아넣는 형태로 가해와 피해, 피해와 가해를 흩뜨려 놓는다. 끝으로 중국 경찰관이 그의 성냥갑에 한자로 표기해 주었다는 호텔 주소는 ‘小心! 馬上就要結束了!’인데, 정확하지 않은 내 지식에 의하면 이 말은 ‘조심하시오! 곧 끝날 테니!’라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