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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문』 나쓰메 소세키 (비채, 2012)


지하려 잡은 승강구 쇠파이프가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웠다는 건, 무엇을 말하고 싶어서였을까. 느리게 공간을 이동하고 느리게 시간을 훑는 제대권락(臍帶卷絡)의 앵글. 죽은 아이가 아니라 소스케 자신이 불안의 탯줄에 휘감겨 있다. 제로섬 게임. 그러나 즉시 혼합되고 잊어버리게 되는 카드놀음. 미음은 고유한 세계 안에 있다. 그것은 약동하는 생명처럼 소유자와 더불어 하나의 체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그 마음의 소유자가 의식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것은 순수하게 그 마음에 들어앉지 않는다. 감각과 의식은 항상 재구성되므로. 함몰된 마음의 문(門)이다. 무엇인가를 의식할 때는 익숙하게 여기던 친숙함이 문제를 일으킬 때다. 소스케는 불안과 불안정, 불유쾌함과 부재(不在)의 와류 속에서 바동거리고 있다. 「가는 자는 가지 않는다. 가는 자가 아닌 것도 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가는 운동도 아니고 가는 자도 아닌, 제3의 것이 가는 것인가?」라고 했던 저 옛날 나가르주나의 논의는 꽤나 어렵게 다가온다. 모든 것이 공(空)하다는 생각, 불변하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소스케에게는 어떤 면에서는 맞고 어떤 면에서는 아니다. 친구 아내와의 간통, 그 아내의 잇단 유산, 동생의 장래와 자신의 미래, 어떻게든 앞으로 밀며 나아가고 싶지만 결국 안주하게 되는 ‘절벽 밑’의 삶……. 불교에서 찾아내는 고통의 원인은 집착으로 귀결되곤 한다. 무엇인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그런 형태의 것을 원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으로 이어지는 문. 그 속으로 들어간 것들은 끄집어내기도 전에 굳게 문을 잠그고 어지러이 표류하고야만다. 속이 전부 썩어 있어 본래처럼 단단해질 수는 없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니’ 진통제로 가라앉혀 보자는 치과의사의 말이 「그렇지만 또 겨울이 올 거야.」하고 되뇌는 소스케의 인식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까닭이다.


덧) 이 작품을 읽으니 작가 자신의 작품 『마음』이나 바진(巴金)의 『차가운 밤』도 괜히 함께 떠오른다. 그 가라앉은 문체와 정신세계 말이다. 역시 싸이는 십 원, 소세키는 천 엔, 이라는 건가, 라는 건 글이 다소 무겁게 써져서 그냥 해보는 농담(싸이 씨, 억하심정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