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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7인의 미치광이』 로베르토 아를트 (펭귄클래식, 2008)



오도르 립스(theodor lipps)의 '감정이입설'에 비유하자면, 주인공 에르도사인의 감정은 범죄에 매료되고 돈에 매료된다. 모든 것은 허무와 거짓말로 귀결되고 동시에 그 모든 것은 환상이다. 에르도사인은 마치 존경과 멸시를 함께 받는 종교인과도 같다 ㅡ 리얼리즘 혹은 판타지 ㅡ '내 바깥에, 내 육체의 경계를 벗어나면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p.120)).' 범죄와 비극을 바라는 그는 점성술사의 '목 매단 인형'으로 대치되며 혼란 속에서 그 혼란을 스스로에게 가중시킨다 ㅡ 에르도사인이 발명가로 설명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일 것이다. 즉, 허구에서 현실을 보고, 현실에서 허구를 본다. 악다구니로 살아가며 돈에 목숨을 걸고, '돈을 짝사랑'하는 거다(짝사랑이라는 게 중요하다). 오직 1㎠ 안에서, 딱 그 1㎠의 존재로서만. 에르도사인(우리)에겐 (유토피아와 같은)허구가 필요하고 (마찬가지로 유토피아와 같은)현실이 필요하다. 그런데 왜 그는 (머리를 싸매고) 범죄(비극)를 꿈꾸는가. 자신의 모순된 허구를 모순된 현실에 덧붙여 꿰매려는 그(들)의 정신세계는 얼핏 불합리하게 보인다 ㅡ 위에서 말한 '리얼리즘 혹은 판타지.' 모순으로써 모순을 극복한다, 즉 거짓말로써 거짓말을 극복한다는 건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시종일관 우울함을 가장한 『7인의 미치광이』는 그래서 더욱 우울하면서도 우습다. 결국 등장인물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허구를 만든게 아니라, '허구를 창조함으로써 현실을 있게 했다.'


어떤 놈이 제 눈앞에서 아내를 빼앗아 가는데도, 그리고 절 배신한 놈이 제 귀싸대기를 때리는데도, 전 남의 일처럼 태연하게 보고만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놈을 죽일 때도 제가 냉정하게 지켜보리란 건 불 보듯 뻔한 일이 아닙니까?

ㅡ 본문 p.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