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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홍신문화사, 2012)


인간의 조건 - 8점
앙드레 말로 지음, 박종학 옮김/홍신문화사


생적으로 인간이란 고통으로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한다, 고 하면 너무 무책임한 말이려나. 소설은 역사의 바퀴 속에서 버둥거리는 군상의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초점은 나약한 개개인에 맞춰져 있다. '인간의 조건'에 어떤 존엄성이 있는가, 하는 질문은 끌어 안은 폭탄과도 같이 위험천만하게만 보인다. 역사책이 아닌 하나의 소설로 읽어야 하기에 인물들의 앙다문 입 속에 들어있는 테러, 인간, 고독, 탈출, 존엄, 노동자, 코뮤니즘 그리고 그(것)들의 조건은 비극의 끝자락에서 유령처럼 희끄무레하게 번지고 있다. 과거 장제스의 공산당 탄압을 묘사하고는 있지만 『인간의 조건』에서는 부차적인 것일 뿐이고, 오히려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극복'을 막연하나마 잡으려 하기에 더욱 더 쓸쓸하다. 탈출하려는 쪽과 그것을 저지하고 단절시키려는 쪽 그리고 평행선과 교차되는 선 사이에서 그 난감하고 경직된 균열이 표시되기 때문에. 그런데 말하자면 그 선과 선의 틈새에 인간의 불안정성과 불완전성이 자리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생명을 초월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란 물음은 그래서 더욱 더 궁지에 몰린다. 크게 첸, 기요, 카토프 등 '이방인'들의 정체성 내지 동일성조차도 허용되지 않으니까. 각각의 변곡점을 통해 인간의 조건에 다가가려해도 힘들 뿐이다. 긴장과 공포, 고통과 희망이 사라질 땐 결국(비로소 그때야말로!) 인간의 조건이란 무의미한 것으로 종결되는 게 아닐까. 자그마한 총알 하나로 세상을 전복시킬 수 있을 리는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현존하는 것 ㅡ 인간 혹은 국가 ㅡ 과 그것의 변이를 수긍할 수 없게 될 때 인간은 죽음과 부정의 덫 안에 갇히게 된다…….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어야만 한다.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변용되는 순간, 하나의 인간은 세상과 아무런 상관도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