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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무라카미 하루키 (비채, 2012)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 8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오하시 아유미 그림/비채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ㅡ 무라카미 라디오 2 ㅡ 가 나오기 십 년쯤 전에 『무라카미 라디오』(까치, 2001)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같은 잡지에 연재했던 에세이를 모은 책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하시 아유미(大橋步)가 삽화를 그렸는데, 어찌된 일인지 예전 것에는 '사정상 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오하시 씨의 그림은 빠지게 되었습니다.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란 편집부의 코멘트 하나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 사정이라는 게 뭔지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귀찮아서는 아니겠지(설마). 이 에세이집을 읽으면서 옛날 글들을 다시 한번 죽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작가는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도 쓸 수 있고 때에 따라선 시도 쓸 수 있다. 뭣하면 이렇게 에세이를 쓰기도 하고. 『어둠의 저편』이었나 『해변의 카프카』였나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도 그즈음부터 하루키의 소설이 좀 부담스러워졌었던 것 같다. 왜냐고 물어도 뭐라 꼬집어서 말할 순 없다. 하지만 그의 에세이는 좋다.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다. 작년 말에 나온 『잡문집』(비채, 2011)도 순식간에 읽어버렸으니까. 이 사람은 소설을 쓸 게 아니라 에세이스트였어야 했어,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2001년에 나왔던 책은 고속버스 안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는 29년간 I시(市)를 벗어난 적이 없으므로 추측컨대 서울에 사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던 것 같다(나로서는 고속버스를 탈 일이 좀처럼 없으니 당연히 범위가 한정된다). 올라가면서 한 번, 내려오면서 두 번째 읽었다. 『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도 지금 두 번째 보고 있는데 절반가량 읽었을 때, 지금쯤 감상이라도 좀 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과 달리 에세이집은 딱히 감상을 쓸 만한 얘깃거리도 생기지 않아서 불안한 감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썩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예컨대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걸 읽고서 2,000자 가까운 분량의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ㅡ 하루키의 에세이는 그보다는 다종다양. 그래서 도저히 잊히지 않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은 아니지만 은근슬쩍 어디에선가 불쑥 생각나는 쪽이다. '아, 어떤 글에서 이런 비슷한 분위기가 있었는데' 하고 말이다. 특유의 '몽글몽글함'이 공백을 채우고 있는 듯한 기분, 정체 모를 메뉴가 적혀 있는데도 모험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뭐 그런 것. 그럴 땐 어쩐지 독자보다는 하루키에게 이익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쓰면서 책을 계속 읽고 있었는데 「슈트를 입어야지」 꼭지까지 와버렸다. 이건 전작의 「양복 이야기」와 비슷한 글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양복'과 '슈트' 정도일까. 그런데 이 양반은 이걸 또 글로 써버렸다. 「이 얘기도 한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 어디였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으므로 일단 처음이라 생각하고 쓴다.」 뭐야 이거, 자기 좋을 대로잖아. 근데, 이상한 게, 이런 점이 좋다니깐, 하루키 에세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