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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가족 사냥(전2권)』 덴도 아라타 (북스피어, 2012)


가족사냥 - 상 - 8점
텐도 아라타 지음, 이규원 옮김/북스피어


'가족 사'에서 '가족'은 주어일까 목적어일까.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을 것 같다. 어떤 공동체가 피로 얽혀있다는 건 무척 기기묘묘한 일이므로……. 애정을 갈구하는 모습이나 반대로 무책임한 태도 역시 가족의 일면이다. 새로운 가족 문제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일본의 2010년 『범죄 백서』를 보면 살인 사건의 50% 정도가 친족 살인이며 상해 치사 역시 친족이 관련된 경우가 50% 정도를 차지한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최근 이삼일가량 아침을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아동학대는 물론이거니와 내 아들이 번 돈이니 며느리는 상관 말라며 마구 써버리는 시어머니, 밖에선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지만 집에서는 폭군으로 변하는 남편 등 이상하리만치 일그러진 가족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러나 이런 처지에 빠진 사람이 아니라면 일종의 행복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나도 마찬가지다. 마치 공포 영화를 보고 나와 '재미있었다'고 느끼는 것처럼, 『가족 사냥』을 덮고 나서 안도하는 것처럼. 「이건 소설(영화)일 뿐이잖아. 우리 가족만큼은…….」 하고. 중요한 건 이 소설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용히 손을 들고 발언을 하고 있는 거다. 자신의 이상을 좇기 위해 자녀를 희생시키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혹여 자식에게 거추장스러울까 부모가 가족 안에서의 은거를 취하는 게 옳은 일인가? 여기에 스도 슌스케가 다니는 학교의 관리인 ㅡ 그녀의 아버지는 과거 한국에서 일본으로 강제 연행되어 왔다 ㅡ 의 얘기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그녀는 학교를 떠나기 전 학생들 앞에서 말한다. 「여러분이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악인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가 고향에서는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의미도 사실은 이해할 수 없을…….」 마지막 말은 교감에게 제지당한다.





그림은 파울라 레고의 「가족」(1988)이다. 부인과 두 아이는 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있다. 성적인 뉘앙스가 아니다. 이 그림에서 아버지는 가장으로서의 의미가 아닌 '쥐어 짜이는' 인물로 전락해버렸다. 정말 가족이란 공동체는 신성함 그 자체일까? 나에게는 오른쪽 창가에 있는 아이의 표정이 가장 두려워 보인다……. 가족이란 공동체는 외부와 맞서 대립하는 가족 이기주의와 집단 무의식의 모습을 취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가족 내에서의 투쟁이라는 측면도 알게 해준다. 왜 내가 가족과의 알력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소설에서 해충 구제를 하는 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가족은 '자신의 괴로움과 고통을 용감하게 공유해 주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어떤 건물을 짓든 우선 토양부터 소독해야 하듯이 이 이야기의 가족 문제를 들여다보려면 근저에 깔린 가족의 썩은 지탱점을 보수해야 한다. 내 짧은 생각에, 타인에 대한 사랑은 가족으로부터 생겨난다. 자기만족을 채우려는 욕구 ㅡ 물론 모든 가족은, 모든 인간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ㅡ 가 강한 구성원이 있다면 사랑의 단계는 현저히 낮아지고 말 것이다. '가족'이라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자면,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문제는 반드시 존재하고 있다. 그러니까 나(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릇된 행복감을 얻고서 자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90년대부터 써보고 싶은 게 있었지만 그즈음에는 아직 유아학대나 아동학대를 이야기의 중심에 놓는 것은 이르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내 표현력도 부족했고 (...) 그런 일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굉장히 많았겠지만 소설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란 측면에서는, 당시에는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 사회가 그런 소설을 수용할 수 있는 밑바탕이 마련되지 않았다고나 할까.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와의 대담집 『소년과 아프리카』에서 덴도 아라타가 한 말이다. 그럼 지금은 사회가 변했을까. 그때는 이런 문제를 드러내놓고 얘기할 만큼 황폐해지지 않았다는 뜻일까. 『가족 사냥』에서 하나의 은유로 투영되는 흰개미의 여왕개미는 한 번의 교미로 정액을 축적하지 못하기 때문에 언제나 수컷(남편)과 함께 지낸다. 말하자면 가족생활이다. 사랑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인간으로 이루어진 가족도 언제나 사랑으로 유지되고 있을까? 내가 타인을 사랑하는 순간 나는 상대방으로부터의 사랑 또한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그를 버리고 떠날 수도 있다. 문제는 과연 가족 관계에서도 이 동어반복이 가능하겠냐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