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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미쓰다 신조 (비채, 2012)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 6점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비채


매(厭魅): ①가위 누르는 귀신. ②짚으로 만든 인형(제웅)을 매개로 삼는 주술의 일종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병에 걸리게 하려고 귀신에게 빌거나 방술을 쓰는 행위.



민속학습서쯤 되려나. 이미 '도조 겐야 시리즈'가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과 『산마처럼 비웃는 것』이 번역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이 시리즈의 첫 작품이긴 하지만 시간상 나중에 국내 출간됨으로써 그렇게 느껴질 만도 하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거듭되는 작품에서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부분을 줄여나간 게 아닌가 하는 기분이 든다. 호러와 미스터리는 대립항처럼 보이기도 하고 융합의 접점을 보이기도 하는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후자의 매력을 양껏 포함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 다른 작품들은 『염매...』에 비해 다소 긴박감이 잘 드러나 있으므로. 소설은 마을의 이름과 유래부터 신앙까지, 독자로 하여금 그야말로 첩첩산중에 발을 들이게끔 하는데 당연히 이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러한 배경지식이 쌓임으로써 우리는 일본어로 '기리(霧)'를 음독하면 '무'인데 몸을 나타내는 '미'의 고어는 '무'이므로 이름에 항상 '霧'가 들어가는 것은 산신(山神)에게 몸을 빌려준다는 의미로 작가가 이런 이름을…… 라는 것까지 연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ㅡ 물론 추측에 불과하지만. 내용은 (내가 보기에)어디까지나 미스터리인데 호러의 색이 짙다. 호러나 미스터리나 그게 그것처럼 여겨질 수 있겠으나 '민속학습서'라고 한 데에서 느낄 수 있듯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게다가 역시 시리즈의 첫 작품이니만큼 그 독특함이랄까, 투박함이랄까 하는 것들이 어색하면서도 그것만의 매력으로 읽힌다.







처음부터 생각해보지도 않고 괴이를 받아들이는 건 인간으로서 한심한 일이야. 그렇다고 인지를 뛰어넘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건 인간으로서 오만한 거고.


ㅡ 본문 p.266




분명 호러의 느낌이 강하다보니 추리소설로서의 의미나 필연성이 옅어진다는 감상 또한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것'이다(교고쿠 나쓰히코의 특정 시리즈가 그만의 매력을 지닌 것과 같이).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의 눈을 멀게 한 약이 여기서도 등장한다는 건 무녀의 위엄과 마을의 존속이라는 측면에서 같은 운명을 지녔다고 할 수는 없을까? 인습타파를 주장하는 인물이 적어도 존재하기는 하는 것이 저들의 입장에서는 위험한 반론이 아니었을까? 그런 와중에 근친상간이나 혼외정사라는 엮임이 있다면 또 얼마나 복잡한 관계와 갈등이 빚어질까(이게 주는 아니지만)? 이와 비슷한 의문들을 품고 있으면, 막연하게 중첩되던 농무를 조금은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둑어둑한 무신당 안에서 삿갓에 도롱이 차림으로 목을 매고 입안에 빗을 문 수험자의 시체를 미치광이 여자가 즐겁게 흔들고 있다…… 이런 광경으로 시작되는 첫 번째 괴사부터 역시 같은 차림새로 손에 자신의 목을 딴 낫을 들고 펼쳐진 부채를 입에 물고 죽어있는 시체까지, 편벽한 마을의 특성과 작가가 주물거린 민속학적 이야기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결국 중반부까지 어리둥절했다가도 끝에 가서는 불만이 없어지는 ㅡ 다시 말해 무턱대고 복잡하게만 써서 독자에게 반칙을 가하려는 게 아니라는 점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잘 따라간 자에게는 느껴질 것이다.



덧) 지금까지 번역된 작품들의 표지를 보면 검은색 일색이었는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하얀 바탕이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점점 어두워지는 패턴을 사용하려는 건가, 하는 억측을 잠시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