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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장준하 평전』 김삼웅 (시대의창, 2009)


장준하 평전 - 8점
김삼웅 지음/시대의창





세금 몇 만원 깎아주고 3S나 보여주고

누가 몇 천억을 어떻게 해먹든

누가 몇 사람을 어떻게 죽이든

난 살아있으니까

상관없으니까.


ㅡ UMC/UW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어 놓았더니





루가 조금 못 되어 읽었다. 너무나도 조용한 불안감이 든다. 왜 다시 장준하인가를 생각할 때 그것이 꼭 현시점에서 기인한다고는 하지 못하리라. 지금, 2012년 가을을 살고 있으므로 분명 그러한 감은 있겠으나, 반드시 이런 식으로 맞물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장준하 선생, 저는 감히 당신의 이름 석 자 앞에 '민족'이라는 이름을 붙여드립니다. 그것은 중세, 근세의 소위 문신(文臣) · 귀족들의 개수작 같은 호(號)가 아닙니다. 당신이 당신의 온몸을 바친 민족이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죽음에 귀납되어온 것입니다.」 고은 시인의 말대로 장준하라는 이름 앞에 '민족'을 붙이는 것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일지 않는다. 다만 '민족'이 '민족 모순'과 대치되었고 대치되고 있는 과거와 현재를 생각해보자면 흙탕물 같은 이 세계에 화마저 제대로 낼 수 없는 것에 또 화가 날 뿐이다. 패망에 쫓기는 일본에서 탈출하고, 임시정부를 찾아가고, 《사상계(思想界)》를 창간하여 백지 권두언을 싣고, 의문스럽게 추락사(당)했다. '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총구혁명론이 '일체의 혁명은 이론서 위에서 출발했다'라는 말에 제압당했듯 장준하의 혁명은 《등불》, 《제단》, 《사상》으로 이어져 《사상계》라는 시대의 석간수가 되었다. '종이혁명'의 진원지나 다름없는 것이다. 20세기 초 중국의 국민계몽지였던 《신청년》의 전신인 《청년잡지》 창간호에는 사상가이자 혁명가인 진독수(陳獨秀)의 '창간선언' 「청년에게 고함(敬告靑年)」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노예적이지 말고 자주적이어라.
보수적이지 말고 진보적이어라.
은둔적이지 말고 진취적이어라.
쇄국적이지 말고 세계적이어라.
허식적이지 말고 실리적이어라.
공상적이지 말고 과학적이어라.




돌멩이로 이루어낸, 피지배층이 지배세력을 교체한 4.19 학생(시민)혁명 등을 놓고 '혁명'이 아닌 '사태'로 규정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유신이 공포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셈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몰라도 지금 걷고 있는 철로가 어그러져있다는 사실만큼은 소리 내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자마자 입관(入棺)되는 굵직굵직한 사상 말고, 손이 베일 것처럼 예리한 진동을 줄 수 있는 시대정신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미시도 좋고 거시도 좋다. 구조 자체가 없는 지금을 탐색하려면 미시든 거시든 어떤 전환이 필요한 까닭이다. 국가보안법파동(2.4파동)을 보고서 《사상계》에 '무엇을 말하랴 - 민권을 짓밟는 횡포를 보고'라는 제목만 붙인 백지 권두언을 쓰고, 거대재벌의 사카린 밀수에 「박정희란 사람은 우리나라 밀수왕초다」, 「존슨 대통령이 방한하는 것은 박정희 씨가 잘났다고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청년의 피가 더 필요해서 오는 것이다」라고 비판할 사람이 장준하 말고 누가 있을까 ㅡ 그러나 굳이 이런 예를 들어야만 아주 약간의 각성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사상결단, 유신, 긴급조치와의 투쟁은 먼 과거이지만 아주 가까운 얘기이기도 하다. 눈을 부라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지언정 책이라도 읽어서 사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