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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K · 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황금가지, 2013)


KN의 비극 - 8점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황금가지


떤 일이 벌어져도 끝에 가서는나의 귀결로 마무리될 것이라 짐작했다. 그 '어떤 일'이란 바로 타이틀처럼 K · N에게 일어난 비극인데, 『제노사이드』의 신인류, 『13계단』의 사형 제도와 함께 여기서는 임신과 중절을 다룬다. 《시사매거진 2580》이나 《PD수첩》이 자칫 선정적일 수 있는 소재를 보도와 함께 버무렸다면 이 『K · N의 비극』은 같은 것을 소설로 만들었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교고쿠 나쓰히코가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 우부메(産女) 전설을 차용하려는 듯싶다. 우부메는 하반신이 피로 물든 채 아이를 안고 나타나 지나가는 이에게 아이를 맡긴다. 만일 그 갓난아이를 안게 되면 그 아이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안고 있던 자가 무게를 견뎌내면 우부메는 성불한다, 는 내용이다. 대신 이 소설에서는 아이를 임신한 채 죽은 여자의 정념이 빙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일반적인 혹은 사회 통념적 냄새가 나는 명제 하나. 남편 슈헤이는 천인공노할 개새끼이고 아내 가나미는 힘없는 약자라는 뉘앙스를 풍기고는 있으나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면 나는 외려 다카노 가즈아키 자신이야말로 천하의 악독한 자라고 본다. 그러나 그럴 의도가 명백히 있었다고는 할 수 없을는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임신한 가나미는 출산을 원했기 때문이다(순서야 어찌 됐든).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둘 모두의 책임이다. 콘돔이라는 (엄청난 위력을 지닌) 얇은 비닐 쪼가리와 사후 피임약, 그것들을 사용하지 않은 것은 ㅡ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ㅡ 여자건 남자건 매한가지이므로(《투캅스 2》의 이 형사마저도 의도하지 않았다, 그저 그렇게 생겨 먹은 것이지). 적어도 내가 보기엔 광범위한 익명의 '그 남자'도 같은 맥락이다. 『K · N의 비극』은 강간과 같은 범죄를 다루지 않았다. 부부간의 일이다. 그러므로 자칫 이상적인 해답을 요구하는 신파로 흐를 수 있다고 보는 거다. 범죄의 피해로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면, 어지간한 세간의 시선으로는 중절 수술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권유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이야기보다도 더 절실한 경우라면 어떨까. 생명 의식? 좋다. 선악과 시비? 그것도 좋다. 그러나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섹스를 쾌락의 관념으로 보든 생명을 잉태하는 성스러운 관념으로 보든 섹스 후에 벌어질 일만은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부 사이의 섹스로 계획에 없던 임신을 했다고 하여 낙태를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윤리적인 문제로 출산을 했지만 경제적인 이유(이 문제가 가장 클 터다) 등으로 아이를 버리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가. 윤리를 거스를 수 없으니 반드시 출산해야 한다, 이런 생각부터가 글러 먹은 것은 아닐까? 분명히 자신들의 아이라는 제2의 피해자를 양산하는 꼴이다. 내가 보는 『K · N의 비극』은, '빙의'라는 현상을 들이밀지 않았다면 '피임을 생활화합시다' 식의 빤한 논리로 흐를 뻔한 소설이다. 소재 자체가 너무 쉽게 들여다보이는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차라리 그쪽은 제쳐 두고(맨 처음에 썼듯 결국 하나의 귀결로 향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내 가나미에게 빙의 현상이 나타났을 때의 기술이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