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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플루토크라트』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열린책들, 2013)


플루토크라트 - 8점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지음, 박세연 옮김/열린책들


년 전 알게 된 용어로 플루토노미(plutonomy)가 있었다. 그것은 암흑물질(dark matter) 이론, 땀의 균형(sweat equity) 이론, 용감한 신세계(brave new world) 이론과 함께 미국 경제의 수수께끼를 설명하는 4대 이론 중의 하나였다. 그중 플루토노미는 소득과 부의 편중현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는데, 크리스티아 프릴랜드가 쓴 이 『플루토크라트』를 통해 다시 한 번 플루토(plutos)란 단어를 듣게 되었다(물론 맑스도 함께 떠올리게 되고). 그리고 책을 읽자마자 존 스튜어트 밀의 역사적인 말을 듣게 된다. 「부를 창출하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진보는 항상 지주들의 소득을 높이고, 그리고 그들이 빚어내는 문제나 소비와는 상관없이 더 많은 재산과 더 많은 공동체 지분을 선사하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의 재산은 끊임없이 증가한다. 아무런 일이나 위험, 또는 절약하려는 노력이 없어도 그들의 부는 말 그대로 자는 시간에도 늘어나고 있다.」 소득 불균형의 사회적, 정치적 영향에 대해 심각한 우려가 이어지는 이때에 어쩌면 밀의 말은 조금은 달라진 의미를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1%와 99%의 대립이 과거의 그것이었다면 플루토크라트는 그 1% 안에서도 0.1%와 0.9%를 나누는 잣대로 작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소위 '일하는 부자'라는 점. 물론 한국의 그것과는 접점이 없을는지 모르겠다. 플루토크라트는 부와 권력의 앞에 자수성가라는 단어가 동반될 수 있으나 이쪽은 자수성가보다는 대물림에 의해 형성되고 있으므로 ㅡ 『플루토크라트』의 북 트레일러에는 의미심장한 성경 구절이 등장하고 있다. 「있는 자는 더욱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기리라.」 세계 경제 속의 플루토크라트들은 (규모는 차치하더라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국가의 정책 방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들은 엄청난 재산으로 독재자에 맞서거나 그 재력으로 선거 운동에 직접적인 후원을 하는가하면 공공 기관 혹은 이데올로기에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물론 정치적 입장이나 부와 권력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면 이들의 행보는 썩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사악하게만은 보이지 않는, 이를테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으며 그 스스로가 플루토크라트이기도 한 워런 버핏은 정치인들을 향해 세율을 높일 것을 촉구한 바도 있다 ㅡ 「계급투쟁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전쟁을 도발한 쪽은 나의 계급, 즉 부자 계급이며, 우리는 승리를 거두고 있다.」 「이제 우리 부자들을 그만 위하고, 나 같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으라.」 세금이라면, 플루토크라트라 보기엔 어려울지 모르나 아일랜드로 세금 망명을 떠났다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바 있는 소설가 미셸 우엘벡의 우스꽝스러운 사례가 있다(아, 제라드 드빠르디유는 어떻게 되었는가).



플루토크라트들은 그대로 쭉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쥐고 성장해나갈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눈앞의 탐람에 빠져 자신들을 탄생시킨 사회 체제와 번영의 토대를 뭉개버릴지도 모르며, 그들의 모습(이랄까)은 0.9% 혹은 99%의 사람들로 인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특권의 천박한 측면은 이럴 때에 드러난다. 소위 상류층 사람들의 무례한 행동들 또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리라(신문지 회장, 라면 상무, 빵 회장 역시 '그들'일까?). 심리학을 다루는 연구원들의 실험과 코멘트는 다음과 같다. 「상류층 사람들은 서민들보다 더욱 비도덕적으로 행동한다.」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행복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더욱 긍정적이고 사회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다시 비도덕적인 행동을 자극하는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전체의 일부이길 바라는 실험 결과는, 값싼 구형 자동차를 모는 운전자들보다 고가의 신형 자동차를 모는 사람들이 두 배나 더 많이 다른 차량과 보행자들의 진행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현실에서 소득이 더 높은 사람들일수록 가상의 입사 지원자들이 낮은 연봉을 수락하도록 만들기 위해 속임수를 더 많이 써 경영자들에게 많은 보너스를 안겨 주고자 했다는 것을 알려주었으며, 자신이 부자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동 방식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는 소득 불균형을 찬양한다. 그리고 하위 20%와 상위 20%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미국의 현실에 박수를 보낸다」로 시작하는 글을 발표한 어느 외환 및 채권 중개인의 얼굴일 것이다. 그러니 '나머지'란 접두어가 필요한 99%(99.9%)의 사람들은 어쩌면 너새네이얼 웨스트의 『거금 100만 달러』의 주인공 레뮤얼 피트킨과 닮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말했잖아요. 저는 죄가 없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걸 입증할 돈이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