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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A 케어』 구사카베 요 (민음사, 2013)


A케어 - 8점
구사카베 요 지음, 현정수 옮김/민음사



[스포일러 있음]


전에 SNS를 통해 어느 의사의 인턴 시절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응급 환자에게 20분 가까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던 그에게 여성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저 사람은 어차피 죽을 것 아니냐, 그보다는 열이 펄펄 나는 우리 아들 쪽이 더 응급 아닌가.」 이런 사람은 무척이나 많기 때문에 새삼 놀랄 것도 없다는 의사의 고백에서 씁쓸한 자조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일견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던 환자가 가망이 없다 하더라도 아이의 어머니와 같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낸다는 것은 상당히 무섭기도 하다. 가망이 없으면 버리고 나머지 가능성에 온 힘을 쏟아야 하는가. 이 『A케어』는 이미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신의 손』을 통해 안락사를 이야기했던 작가의 데뷔작이다. 원제는 '폐용신(廢用身)'. 책에 있는 설명을 그대로 옮기자면, 폐용신이란 뇌경색 등의 이유로 마비되어 회복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팔다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폐용, 영구적으로 불구가 되었으니 쓸모없다는 뜻. 'A케어'에서 A는 절단을 뜻하는 앰퓨테이션(amputation)의 머리글자를 떼어낸 것으로, 어차피 움직이지 못하고 감각도 없는데다가 실생활에 불편함까지 주니 아예 절단을 하여 남은 삶을 다른 방향의 가능성에 투자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시술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윤리라는 것이 간섭한다. 이 경우에 빗대어 보면 허울이라고 볼 수도,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존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분명 어느 쪽이든 문제가 되리라. 미성년자의 매춘을 단어만 바꾸어 원조 교제라고 하듯 A케어 역시 그 내용은 노인의 팔다리를 절단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아들이 아버지의 목을 졸라 죽게 한 사건이 있었다. 뇌종양 말기로 고통 받던 아버지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과 간병의 부양을 짊어진 가족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제 가족에게 죽여 달라고 간청했다. 그런가하면 기뻐해야 할 딸의 취직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해 기초수급대상으로 받던 의료 혜택이 끊어져 자살한 아버지의 이야기도 있었다. 의료 시스템의 허점은, 환자는 물론이거니와 환자의 돌봄과 보살핌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가족 당사자를 온전히 껴안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실제로 내 조부모는 현재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그 전까지 집에서 모신 것은 반년 남짓밖에 안 되었으나, 상처하신 아버지와 단둘이서 치매를 앓고 있는 두 분을 돌보기에는 벅찼다. 나로서는 심지어 이따금씩 미워하는 마음마저 불쑥불쑥 생겨나곤 했던 것이다. 『A케어』에는 이런 치매 환자들도 등장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 일부를 지닌 환자들과 동시에 고령화되어가는 사회에서의 노인 의료에 관한 문제가 주를 이룬다. 매일 화장실에 갈 때나 휠체어에 오를 때 마비된 다리가 가족과 간호사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 비록 움직일 수는 없으나 때때로 발생하는 통증, 그것에서 촉발된 A케어는 환자의 자괴감이나 고통을 덜어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단된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추어 보았을 때나 외부인의 시선에 곤란해 하는 가족을 바라볼 때에도 A케어의 효용은 가능할 것인가, 하는 것에는 뚜렷한 답을 내놓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은 환자 본인의 의지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해도 말이다. 더군다나 소설에서 A케어를 받는 것은 대개 고령화 사회를 살고 있는 노인들이지만 『신의 손』에서의 안락사의 경우와 같이 외려 청장년에게 필요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테고. 어느 쪽을 선택하든 난감하고 모순된 결과를 낳을 수 있기에 괴롭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