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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남산의 부장들』 김충식 (폴리티쿠스, 2012, 개정증보판)


남산의 부장들 - 8점
김충식 지음/폴리티쿠스


유적이든 무엇이든 간에 이 빌어먹을 양반들, 한국을 좀먹는 부장들은 아직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권력 어딘가에 촉수를 들이밀어 끈덕지게 들러붙어서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아니면 그/그들을 부리는 자들이 부장들의 필요성에 의심을 품지 못하고 있거나……. 과거의 중앙정보부 부장들은 남산에 있었다. 저자는 그것을 일컬어 양산박(梁山泊)이라 했다. 양산박은 중국 산둥성 서부에 있는 늪인데, 지형이 험준해서 예로부터 도적이나 모반군의 근거지로 사용되었다. 양산박이건 복마전이건 확실히 남산은 한국 정치에 있어 어떤 의미로든 빼놓을 수 없는 곳임에 틀림없다ㅡ '남산에 간다'는 것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남산은 중앙정보부의 별칭으로 남산 중턱의 1호 터널 북측에 그 본부가 존재한 데서 비롯되었다. 숱한 가혹행위와 정치 공작의 산실이다. 심지어 국회의원도 수십 명씩 잡혀 가 얻어맞거나 고문을 당하지 않았나. 김지하가 「오적(五賊)」을 썼을 때도 매한가지였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상 국가원수모독죄가 존재하는 현실이다. 시국 선언을 하거나 그림 한 장을 그려도 조사를 받거나 고발 당하기 일쑤다. (비록 이 책이 박정희 시대만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박정희의 5.16 쿠데타 이후로 2014년 현재까지 이어져 온 한국 사회의 전통이다. 달라진 것이 없다ㅡ 세간에서 '박통 시즌 2'라고 부르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것을 보아도 그렇다. 이후락이 떡을 만지는 사람 손에 떡고물이 묻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듯 어느 면을 보나 과거의 한국과 현재의 한국은 별반 다르지 않다.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김두한이 국회에 분뇨를 뿌렸을 때가 새삼 정겹게만 느껴지는 연유는 바로 이런 모습들에서 기인한다.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예선에서 탈락하고 귀국한 축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엿을 던질 일이 아니다. 차라리 국회에 던지라. 엿이 아깝다……. 돌아보면 한국 정치 혹은 한국 사회에서는 참으로 다종다양하고 다이내믹한 일들이 많이도 일어났다. 군부의 쿠데타 이후 국회의원의 초산 테러, 의문의 여인 정인숙 피살, 말로만 듣던 채홍사의 실체, 여야 가릴 것 없는 남산의 공작, 개헌, 유신, 부정 선거, 국회의원 납치와 살인미수, 망명, 비자금, 평양 밀행, 대통령과 영부인 피살, 또 다른 쿠데타…… 이 외에도 규모가 작아 '해프닝'으로 불릴 수밖에 없었던 일들도 부지기수다. 누군가는 지금, 박정희를 연구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 정치사에서 박정희를 제외시킬 수는 없다고 말이다. 물론 그를 빼놓고는 한국 정치는 재미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민주주의 하의 시민들의 집회에서 최루액과 물대포가 등장하는 마당에 박정희 연구라니. 과연 그런 논의가 있어야 할까 싶다. 이렇게도 하루가 다르게 수많은 일들이 벌어지는 '다이내믹한 한국 사회'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