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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예루살렘 광기』 제임스 캐럴 (동녘, 2014)


예루살렘 광기 - 8점
제임스 캐럴 지음, 박경선 옮김/동녘


루살렘에,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이 열병(熱病)의 땅에 히친스(『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읽어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광기 충만한 언덕 위의 도시ㅡ 아랍인의 함락,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의 대학살, 여러 차례에 걸친 십자군 원정, 밸푸어 선언에 이은 첨예한 마찰,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양분과 재점령, 2차 대전 이후 다시 세워진 이스라엘과 갈 곳 잃은 유대인들,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분쟁,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의 슬픔이 집약된 통곡의 벽……. 예루살렘의 대표적 유적지 중 하나는 십자가의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성묘 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라고 한다. 예수가 안장되었던 묘지에 세워진 것으로 '십자가의 길'의 제10지점부터 제14지점까지가 이 교회 안에 위치한다고(1~9지점은 예수가 십자가를 메고 걸었던 곳). 다시 말해 성묘 교회는 골고다 언덕 위에 있어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맞이한 뒤 안장된 묘지에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을 찾는 순례자들은 너나없이 묘지에 입을 맞추고 언덕에 오른다. 그런데 심지어 이 교회를 여러 종파가 나누어 관리하고 있단다. 옛 골고다 언덕과 중앙 예배당은 로마 가톨릭교에서, 예수의 부활을 상징하는 또 다른 기념 묘지는 콥트 교파에서, 또 다른 주요 장소들은 그리스 정교회에서ㅡ 교회의 열쇠는 이슬람 측이 가지고 있다. 교회 하나마저도 이렇듯 나뉘어 있으니 솔로몬이라고 어찌 판결을 내릴 것이며 나머지 것들은 어떻게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것이 공중으로 붕 떠버린 도시에 닿기 위해 사람들은 이 땅뙈기(라 지칭해 미안하지만)를 서로 제 것이라 하고 있다.





이스라엘인-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무슬림이라는 두 경우 모두 각기 상대의 파멸을 종말의 전제로 삼음으로써, 깊이 가라앉아 있던 묵시종말론적 기류가 표면으로 떠올랐다 (...) 영토 때문에 시작된 전쟁은 우주를 놓고 벌이는, 영원히 해소될 수 없는 자기최면적 전쟁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 그러므로 우리의 주제는 종교 이상이기도 하고 이하이기도 하다.


ㅡp.498~499




어디 종교적 상징성의 측면이 이것뿐일까. 이스라엘의 종교에 있어 어머니의 도시이자, 유대교의 '통곡의 벽' 이후 약속의 땅으로, 또 그리스교에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땅이다. 고대부터 중세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광기를 머금은 자들이 숱하게도 혀를 날름거렸던 바로 그곳이다. 『예루살렘 광기』는 이 '종교적 폭력의 본거지'를 철저하게 궤를 같이한 (종교적)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고(이 많은 것들을 어찌 다 말할까) 또 이러한 색채를 띤 이야기를 거치지 않으면 예루살렘에 한 발짝도 들어가지 못한다. 자,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다윗이 정복해 수도로 삼았지만 이후 나라 자체가 두 개로 갈라졌다. 그러나 훗날 그리스인들이 예루살렘 일대를 재정복하고 유대교에 그리스 문화를 접목시켰지만 유대인들에 저항에 의해 재차 그들의 도시가 되었고, 거듭 로마의 헤롯이 왕의 자리에 오른다. 성전에 발을 들인 예수는 예루살렘을 두고 '선지자들을 돌로 죽인 도시'라 한탄하고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다. 그리고 예수 사후 반란을 진압한 로마의 성전 파괴, 3세기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세운 교회(여기에 '십자가의 길'이 속해 있다)까지ㅡ 지상에 존재하는 예루살렘과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상의 예루살렘 중 어떤 것이 그 실체일까? 저 옛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세계의 중심으로 그려 넣었던 지도는 존중의 의미일까 아니면 정복의 야심일까? 나아가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는 돌아온 탕아들의 다툼으로만 봐야 할까?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으며 「마이크 타이슨이 아기를 두들겨 팬 뒤 '이 아이가 나에게 침을 뱉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일컬어지는 가자지구 폭격은 어떤 종교적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까? 캐럴의 집요한 추적은 『예루살렘 광기』로 만들어져 종교의 또 다른 이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거기에서 종교가 아닌, 광기 어린 폭력의 역사를 발견하게 될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