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치킨전 - 정은정 지음/따비 |
코흘리개 적 '통닭'이었던 것이 '치킨'으로 불리고 기름기 좔좔 흐르던 포장지는 피자 박스처럼 변했지만(물론 어디선가는 '옛날 통닭'이런 것을 지금도 튀겨주기는 한다), 닭에 관한 우리의 논의는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1인 1닭'을 외치는 이들도 있는 만큼 조류 독감과 같은 재앙이 닥쳐올지언정 이런 닭에 관한 탐구 역시 존재하질 않나ㅡ 실제로 나는 군 시절 조류 독감이 한국을 휩쓸었을 때 점심 식단으로 '1인 1닭'을 몸소 실천한 바 있다(광우병 파동 때도 마찬가지). 담배 한 개비 피우고자 아파트 동(棟) 밖으로 나와 치킨 배달 오토바이와 마주쳤을 때의 부러움과 돌아나오는 그의 등짝 뒤로 엘리베이터에 그득한 기름 냄새의 황망함. 나도 치킨 한 마리 시켜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 찰나, 집에 모셔둔 쿠폰이 몇 장 남았는지를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헤아리고 있는 쓸쓸함(치킨게임 ㅡ chicken에는 '겁쟁이'란 뜻이 있다 ㅡ 으로 닭을 모독하는 자, 그대에게 화 있을진저!). 책은 어릴 적 향수를 자극하기도 하고 치킨의 역사와 종류, 현주소를 탐방하기도 하며 치킨 산업의 뒤통수를 보여주기도 한다ㅡ '아버지가 월급날 사오셨던 통닭'이란 개념이 환상일지도 모른다면서(그러나 그것은 소위 '양념통닭'은 아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당시 양념통닭이란 것을 먹으면서 이런 소스는 대체 누가 만들어낸 걸까, 하며 발을 동동 굴렀던 적이 있다. 위에는 땅콩 가루도 담뿍 흩뿌려진 따끈따끈한 악마의 메뉴 말이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나 역시도 양념을 손에 묻히기가 싫어져 후라이드치킨(언제고 '프라이드'라 부르는 우를 범할 수는 없겠다)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제는 양념소스를 따로 갖춘 메뉴들이 자리를 잡았다. 파를 올리는가하면 기존의 달착지근한 양념이 아니라 새로 개발된 요상한 소스도 있고, '강정'이나 '순살'로 변신하기도 했다. 저자에 의하면 요즘 후라이드라 부르는 어지간한 치킨은 '크리스피 치킨'이란다ㅡ 바삭함을 뜻한다고. 그러면서 90년대 초반 KFC에서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BBQ, BHC, 치킨시장의 새로운 강자 네네치킨(튀김옷이 과하지 않은 것이 포인트)으로 이어지는 애통의 역사 ㅡ '치맥' 개념의 등장까지 ㅡ 를 설파한다. 이른바 '통큰치킨'이 등장했을 때만 해도 나는 거기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물론 궁금하긴 했다. 하지만 기다란 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뻣뻣하게 기다려 손에 넣었을 때 이것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며 자위한 적이 있었다. 아무리 값싼 것이라도 우리가 거실의 다 헤진 가죽 소파에 앉아 전화번호 두드려가며 시켜 먹던 그 맛도 아닌데다가 ㅡ 통큰치킨은 그 자체가 일종의 '보급형'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ㅡ 그간 익숙해져 있던 '배달 치킨'과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결국 소상공인과 소비자, 소위 상도덕, 극에 달한 치킨업계의 경쟁에 있어 이례적인 대동단결의 결과 통큰치킨은 곧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당시 인터넷상에서는 '통큰치킨 장례식'이라는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시인 김수영의 양계(養鷄) 경험까지 들쑤신 이 책은 어쨌거나 치킨의 역사를ㅡ 양계농민, 프랜차이즈 치킨점, 예비 창업자에 이르기까지를, 현재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벌어질 애환을 섞어 다채롭고도 씁쓸하게 다룬다. 치킨은 지금, 야구장에서 맥주 캔으로 탑을 쌓아가며 소비된다. 혹은 각 가정에서ㅡ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기분이 나쁘니까 전화통을 붙들고 치킨을 주문한다. 저자는 책의 첫머리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치킨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는 '치킨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치킨을 먹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누가 만들고 누가 키우는가 하는 문제, 우리가 야식이라는 이름 아래 곧잘 접하게 되는 치킨이 누군가에게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바로 그 문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