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학생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분노한 양심의 소리를 만천하에 외치고자 하는 갈망에 휩싸인 채, 분노와 열정의 이름으로 시위를 하는 그대들은 무리를 지어 지금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 것인가?
누군가가 권력을 남용한 데 대한 항의를 하러 가는 것인가? 삶의 일상적인 비겁함과 정치적 타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순수하기만 한 그대들의 마음속에서 아직 불타오르는 진실과 공정성에의 갈망을 그네들이 모욕했기 때문인가? 사회가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고, 행복한 사람과 불우한 사람의 운명의 무게를 그릇되게 재는 세상의 불공평한 저울 위에 그대들의 뜨거운 젊음에서 우러나오는 항의를 올려놓기 위해서인가?
혹은, 과학의 붕괴를 선언하면서 그대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오류투성이의 과거로 되돌리려고 하는 편협한 광신자들에게 야유를 보내고, 인류의 관대함과 자주성을 소리 높여 외치려 달려가는 것인가? 아니면 비겁하고 위선적인 인물의 창문 아래에서, 다음 세기의 미래에 대한 불굴의 믿음을, 정의와 사랑의 이름으로 세상의 평화를 실현하게 될 그대들의 믿음을 큰 소리로 외치기 위해서 달려가는 것인가?
ㅡ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오! 우리는 어떤 사람에게 야유를 퍼부으러 몰려가는 것이오. 평생 동안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몸 바쳐 일해 온 끝에 고귀한 대의를 당당하게 지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조국 프랑스의 영예를 위해 진실이 밝혀져 과오가 바로잡히기를 바라는 어떤 노인에게 항의하러 가는 것이오!1
아! 나도 젊었을 때 그대들의 카르티에라탱2을 본 적이 있다. 젊음의 자랑스러운 열정과 자유에 대한 열망, 이성을 짓누르고 영혼을 억압하는 무지한 폭력에 대한 증오로 요동치던 그곳! 제정 하에서는 권력에 맞서며 ― 때로는 부당하게 행동할 때도 있었지만 ㅡ 언제나 자유로운 해방 정신에의 추구로 넘쳐나던 그곳! 그곳의 젊은이들은 튈르리 궁3에 아부하던 작가들에게 야유를 보냈고, 수상쩍은 교육을 하던 교수들에게는 혹평을 서슴지 않았다. 또한 암흑과 독재의 편에 서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분연히 일어서 맞서 싸울 줄 알았다. 모든 희망이 현실이 되고, 내일은 반드시 이상적인 국가의 승리가 찾아오리라고 생각하던 스무 살, 그 시절이 지녔던 아름다운 열정의 신성한 불길이 타오르던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학생들을 들고일어나게 했던 고귀한 열정들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청년들은 언제나 불의에 분노하며, 흉포하고 강한 자들과 맞서서 버림받은 사람들과 박해받은 이들을 위해 싸웠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압제에 시달리는 민족을 위해 다 함께 거리로 나섰다. 폴란드를 위해 그렇게 했고, 그리스를 위해 그렇게 했다. 청년들은 무지한 군중이나 무자비한 독재자의 폭력 아래 고통 받고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들고일어났다. 카르티에라탱이 불타오른다고 할 때면, 언제나 그 뒤에는 오직 패기와 열정만으로 젊은 정의의 횃불을 피워 올리는 청년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라도 망설임 없이 즉각적으로 마치 강물이 흘러넘치듯 너도나도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나는 오늘날 청년들이 들고일어나는 이유가, 반역자 무리에 의해 위협받는 조국, 그 조국이 승전국인 적국에 까발려졌다는 위기감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묻고 싶다. 사물에 대한 예리한 직관, 진실한 것과 정의로운 것을 본능적으로 구분할 줄 아는 감각과 순수한 영혼을 지닌 그대 청년들에게서 찾지 않는다면 그 누구에게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정치적 삶에 처음 눈뜨기 시작했으며, 아직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더럽혀지지 않은 올곧고 선한 이성을 지닌 젊은이들이 아닌가. 오랜 음모와 술책으로 타락한 정치인들, 직업을 핑계로 온갖 타협에 익숙해져 균형 감각을 잃어버린 기자들, 그런 사람들이 지극히 뻔뻔한 거짓말에 눈감고, 명백한 진실을 모른 척 외면하는 것은 납득할 수도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순수하고 순박한 심성을 지닌 청년들이 터무니없는 과오들 속에서 환한 태양처럼 빛나는 투명하고도 명백한 진실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하다니, 젊은이들이 벌써 그렇게 타락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알고 보면 이보다 간단한 이야기도 없다. 한 장교가 유죄판결을 받았고, 아무도 재판부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들은 확실하다고 믿었던 증거 위에서 자신들의 양심에 따라 그에게 유죄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어느 날, 한 사람과 또 다른 몇몇 사람이 그 판결에 의문을 품게 되었고, 마침내 가장 중요한 증거가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재판부는 공개적으로 밝혀진 유일한 증거인 예의 그 증거에 의거해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앞서 말한 몇몇 사람들은 죄수의 형4이 그 증거를 조작한 사람을 고발했다고 밝혔다. 그 형은 가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첫 번째 소송의 재심을 이끌어 낼 새로운 소송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것이 완벽히 명백하며 정당하고 합리적이지 않은가? 여기 어디에 반역자를 구하기 위한 술책과 음흉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건가? 우리는 반역자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이 아닌, 죄를 지은 자가 그 죄의 대가를 정당하게 치르기를 바랄 뿐이다. 그대들은 반역자를 반드시 처벌하게 될 것이다. 이제 진범을 잡아 그대들 앞에 무릎 꿇리는 일만이 남아 있다.
약간의 양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드레퓌스 사건의 재심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대체 무슨 다른 동기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리석은 반유대주의 같은 생각일랑 부디 떨쳐 버리기를. 광포한 편집광처럼 유대인의 음흉한 음모론을 운운하며, 유대인들이 돈으로 매수한 기독교인을 유대인 대신 악명 높은 감옥에 집어넣으려 한다고 생각하다니, 이 얼마나 황당무계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인가 말이다. 터무니없고 억지스러운 이야기들은 하나둘씩 모두가 거짓임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이 모든 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양심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문제는 모든 사법적 오판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서서히 위압적으로 그 세를 더해 간다는 데 있다. 모든 문제가 거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사법적 오판은 살아 움직이는 힘과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심적인 이들은 진실에 매료되고 사로잡혀 점점 더 진실을 찾는 일에 자신을 내던지게 된다. 정의의 실현을 위해 자신들의 재물과 목숨까지 걸면서. 오늘날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은 있을 수 없다. 나머지는 비열한 정치적 음모와 종교적 책동이며, 중상과 욕설이 넘치는 진흙탕일 뿐이다.
하지만 젊은이들의 마음속에서 인류애와 정의에 대한 생각이 한순간이라도 더럽혀진다면 그대들은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12월 4일에 열린 프랑스 의회는 '가증스러운 캠페인을 주도함으로써 공공의 양심에 혼란을 조장하는 선동가들을 규탄하기 위한' 의사일정을 확정함으로써 스스로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나는 내 글을 읽게 될 다음 세대의 사람들을 위해 큰 소리로 외친다. 그러한 표결은 관대함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수치이며,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저들이 '선동가들'이라고 규정한 이들은 양심과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고한 사람이 고문 속에서 죽어 가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는 애국적인 신념으로 사법적 오판이 저질러졌음을 확신하고 그것을 세상에 폭로하여 바로잡고자 했다. 저들이 '가증스러운 캠페인'이라고 지칭한 것은, 양심적인 이들이 외치는 진실과 정의의 소리이자,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프랑스를 인류애와 자유와 정의를 구현했던 나라로 남아 있게 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똑똑히 보라. 의회는 분명 범죄를 저질렀다. 학교의 젊은이들까지 타락하게 만들어, 저들에게 속아 판단력을 상실한 채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 청년들이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은 일을 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인간의 정신에 있어서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용감하며 가장 고귀한 것들에 맞서 시위를 벌이다니, 이게 어디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
12월 7일, 상원에서 열린 회의 후에 언론은 무슈 쉐레르-케스트네르가 무너져 내렸다며 떠들어댔다.5 그렇다, 그가 무너져 내린 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마음과 영혼 모두가! 우리의 소중한 공화국에서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그가 느꼈을 두려움과 고뇌가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가 평생 선의의 투쟁을 해 오면서 공화국을 위해 쟁취하고자 했던 모든 것들, 무엇보다 자유가 그 첫 번째였고, 충성심과 정직성 그리고 시민으로서의 용기 같은 남성적인 덕목들.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세대 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인물들 중 하나이다. 제2제정 시대를 거치는 동안 그는 독재 권력 하에서 살아가는 민중이 입에 재갈이 물린 채 불의와 부당함 앞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와 열기를 억누르며 지내는 것을 똑똑히 보아 왔다. 그는 또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패배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패배의 원인이 전적으로 전제적인 어리석음과 망동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후, 그는 누구보다도 지혜롭고 열렬하게 패망의 잔해에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프랑스로 하여금 유럽에서의 과거의 지위를 다시 차지하게 하는 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인물이다. 그는 우리 공화주의 프랑스의 영웅적인 시대를 치열하게 겪어 낸 사람으로서, 전제 군주제를 영원히 몰아내고 다시 자유를 되찾은 데 대해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확고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굳게 믿고 있을 터였다. 여기서 자유란 무엇보다도,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가운데 각자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인간적인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은 되찾을 수도 있고, 또다시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오늘날 그의 주위의 그의 내면에는 폐허가 된 진실과 정의의 잔해만이 존재하고 있다. 진실을 갈망하는 것은 죄악으로 치부되었다. 정의를 원하는 것도 죄악이었다. 무시무시한 독재정치의 망령이 다시 나타났으며, 사람들의 입에는 또다시 엄청나게 단단한 재갈이 채워졌다. 오늘날 공공의 양심을 짓밟는 것은 시저의 군화가 아니라 정의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이들을 규탄하는 의회의 의원들 모두인 것이다. 입을 다물라니! 저들은 진실을 지키고자 하는 이들의 입을 강압적으로 다물게 하면서, 군중을 선동해 그들로 하여금 소수의 정의로운 사람들을 침묵하게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자유로운 논쟁에 대해 이토록 끔찍한 억압이 조직적으로 행해진 적은 없었다. 또한 수치스러운 공포심이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면서 용감하기 이를 데 없던 사람들도 점차 비겁자가 되어 갔고, 사람들은 매국노나 반역자로 낙인찍힐 것이 두려워 더 이상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소리 내어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신을 지키던 몇몇 신문들마저 황당한 소문들로 인해 흥분한 독자들의 빗발치는 항의 앞에서 바짝 엎드린 채 몸을 사렸다. 지금까지 그 어떤 민족도 그들의 이성과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이처럼 혼란스럽고 혼탁하며 불안한 날들을 지냈던 적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사실이었다. 무슈 쉐레르-케스트네르로서는 오랫동안 그가 보여 주었던 충직함과 위대한 과거가 모두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을 터였다. 그런데도 그가 아직 인간의 선함과 공정성을 믿고 있다면, 그건 그가 확고한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정의의 실현을 위해 자신의 영예와 노년의 안락한 삶을 위태롭게 한 대가로 3주 전부터 매일같이 진흙탕 속에 내동댕이쳐졌다.6 그처럼 올곧은 사람에게는 자신의 정직성이 박해를 당하는 것을 참고 견디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절망은 없을 것이다. 저들은 그의 마음속에 있던 내일에 대한 믿음을 살해했으며, 그의 희망을 독살시켰다. 그 때문에 죽게 된다면 그는 이렇게 탄식할 게 분명했다. 「이젠 정말 끝이야. 이젠 아무런 희망도 없어. 그동안 내가 이루었던 선행들은 나와 함께 모두 사라져 버리는 거야. 이렇게 캄캄하고 텅 빈 세상에서는 도덕은 한낱 말장난에 불과한 거야!」
저들은 애국심을 모욕하기 위해 프랑스 의회의 마지막 알자스로렌 출신 상원의원인 그를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장 의심 많은 사람들의 불안마저 잠재울 수 있는 인물을 매국노, 반역자, 군부를 모욕한 파렴치한으로 취급하다니! 어쩌면 그는 자신이 알자스 출신이라는 사실과 열렬한 애국자로서의 명성이 정의의 수호자라는 까다로운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신의 선의를 보장해 줄 수 있으리라고 과신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 일에 발 벗고 나선 것은, 군부와 조국의 명예를 위해 신속한 결론을 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일을 앞으로 몇 주간 더 질질 끌면서, 진실을 은폐하고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도록 애써 보라. 그러면 그사이 그대들은 온 유럽의 조롱거리가 되어 있을 것이며,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최하위 국가가 되어 있을 것이니!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정치인들과 종교계 인사들은 그와 같은 경고를 조금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또한 학생들은 무슈 쉐레르-케스트네르에게 군부를 모욕하고 조국을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목을 씌워 반역자와 매국노라는 오명과 함께 거친 야유를 퍼붓는 광경을 전 세계에 보여 주고 있다.
물론 나는 길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일부 청년들이 우리나라의 모든 젊은이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거리를 소란스럽게 하는 백여 명의 과격파 젊은이들이 집에서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는 만여 명의 성실한 학생들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음도 알고 있다. 하지만 백 명의 과격파만으로도 이미 너무 많은 게 아닐까? 아무리 소수에 의한 것이라고는 해도 이 시각에 카르티에라탱에서 그런 소요가 일고 있다니 이 얼마나 섬뜩한 징조인가!
그러니까 반유대주의자 청년들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그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반유대주의라는 독이 이미 젊은 두뇌와 순수한 영혼을 지닌 청년들의 머릿속까지 파고들어 가 그들의 판단력마저 흐려 놓은 것인가? 정말 그런 것이라면 머지않아 열리게 될 20세기를 위해 지극히 안타깝고도 걱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권선언문이 발표된 지 백 년이 넘은 지금, 관용과 해방의 지고한 행위가 있은 지 백 년이 넘은 지금, 더없이 가증스럽고 어리석은 광신자들처럼 다시 종교전쟁의 시대로 역행하다니! 그것도 어떤 무리들이 그들의 정치적 입장과 탐욕스런 야심을 지키기 위해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음 세기에는 더욱더 찬란하게 피어나기를 꿈꾸는 인권과 자유의 구현을 위해 태어나고 자라나야 할 청년들이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은 모두가 기다려 온 다음 세대를 위한 일꾼들이다. 그런데 스스로를 반유대주의자라고 칭하면서 모든 유대인들을 말살하는 것으로 새로운 세기를 열려 하다니! 그것도 우리와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그들이 우리와는 다른 종교를 가진 다른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나라, 평등과 형제애가 넘치는 나라에 그런 식으로 첫걸음을 내디딜 수는 없지 않은가! 진정 젊은이들이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면 우리 모두는 비통한 심정으로 흐느껴 울지 않을 수 없으며, 인간적인 행복에의 기대와 모든 희망을 버려야만 할 것이다.
아, 청년이여, 청년들이여! 부디 그대들의 앞에 놓인 고귀하고 원대한 일들을 잊지 말기를! 우리는 그대들이 미래의 일꾼으로서, 저물어 가는 세기가 던져 놓은 진실과 공정성의 문제들을 해결해 나갈 다음 세기의 초석이 될 것임을 굳게 믿고 있다. 그대들보다 앞서 살아온 우리 기성세대들은 그대들에게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의문과 모순과 의혹 들을 남겨 놓고 떠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그 어느 세기보다도 열정적으로 진실을 향한 노력과 정직하고 견고하게 수집한 수많은 역사의 기록들 그리고 그대들이 자신들의 영예와 행복을 위해 계속 쌓아 올려야 할 거대한 과학의 탑의 기반 또한 함께 남겨 놓았음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그대들이 더욱더 너그럽고 자유로운 정신으로 사고할 수 있는 젊은 세대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부끄럼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일에 온전히 쏟아붓는 노력으로 우리를 한층 더 넘어설 수 있기를. 마침내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 넘치는 삶의 기쁨을 솟아나게 할, 인간과 대지의 풍요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을 위해. 그리하면 우리는 그대들에게 이 자리를 기꺼이 넘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이 우리를 계승하여 우리가 꿈꾸었던 것들을 실현해 주리라 확신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동안 이루어 놓은 것들에 만족하면서 미련 없이 이 세상을 떠나 죽음의 달콤한 잠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청년이여, 청년들이여! 그대들의 아버지들이 겪었던 고통과, 지금 그대들이 누리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승리를 거두어야만 했던 끔찍한 전투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기를! 지금 그대들이 자유롭다고 느끼며 마음대로 오갈 수 있고, 거리낌 없이 언론에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어떤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대들의 아버지들이 그 모든 것을 위해 자신들의 지혜와 피를 바친 덕분인 것이다. 독재 정권하에서 태어나지 않은 그대들은 매일 아침 주인의 군홧발에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또한 독재자의 칼날과 사악한 심판자가 내리치는 무시무시한 철퇴를 피하기 위해 발버둥을 쳐 본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대들의 아버지들에게 감사하며, 거짓에 환호하거나 무지한 폭력과 광신자들의 불관용과 출세주의자들의 탐욕에 장단을 맞추며 그들과 함께 춤추는 죄악을 저지르지 말길 바란다. 이제 독재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
청년이여, 청년들이여! 부디 언제나 정의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살아가는 동안 그대들의 마음속에서 정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한순간이라도 흐려진다면, 그대들은 온갖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의 우리의 '민전법'7에 나오는 정의를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법전에서 말하는 정의는 사회적 관계만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그 정의가 존중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높은 차원의 '정의'가 있다. 즉, 원칙적으로 모든 인간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음(재판부를 모욕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을 전제하는 것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도 결백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정의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권리를 추구하는 그대들의 뜨거운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는 근사한 기회가 아닌가? 삭막한 이해관계와 인간관계로 뒤얽힌 추잡한 싸움판에 아직 뛰어들지 않은 그대들이 아니라면 누가 분연히 일어나 정의를 행할 것을 요구할 수 있겠는가? 아직 수상쩍은 어떤 일에도 끼어들거나 연루되지 않은 채 오직 순수한 선의로써 소리 높여 말할 수 있는 그대들, 청년들이 아니라면 누가 그럴 수 있겠는가?
청년이여, 청년들이여! 부디 인간성과 관대함을 겸비한 젊은이들이 되기를! 설사 우리 생각이 틀리더라도 부디 그대들이 우리와 함께해 주기를! 우리가 그대들을 향해, 아무 죄 없는 한 사람이 끔찍한 형벌을 받고 있으며, 분노에 찬 우리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터무니없이 가혹한 형벌 앞에서 단 한순간만이라도 오판의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가슴이 미어지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릴 수 있기를. 물론, 도형장의 간수라면 냉담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대 청년들이여, 아직 눈물 흘릴 줄 알고, 불행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세상사에 민감한 그대들은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어리석은 증오심의 희생양이 된 한 무고한 시민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을 알면서, 어찌하여 그를 구해 내어 그의 결백을 밝히고자 하는 기사도적인 꿈을 꾸지 않는 것인가? 그대들이 아니라면 누가 이 숭고한 모험에 뛰어들 것이며, 그대들이 아니라면 그 누가 위험하고도 당당한 대의를 위해 이상적인 정의의 이름으로 무지한 민중과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그대 젊은이들이 나서서 해야 할 관대하고도 열정적인 일들을 나이 든 우리들이 대신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어디로 가는가, 청년들이여! 거리를 휘젓고 다니면서, 그대들의 찬란한 스무 살의 용맹함과 희망을 어리석은 분쟁으로 얼룩진 진흙탕 속에 내팽개치려 하는 학생들이여, 그대들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ㅡ 우리는 인류애와 진실과 정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1 알자스 출신 상원의원 쉐레르-케스트네르(Auguste Scheurer-Kestner)에게 야유를 보내는 민족주의자 학생들의 시위와 그를 향한 욕설과 위협을 말한다. 드레퓌스의 결백을 확신하고 그의 재심을 위해 노력한 결과 이 '노인'은 온갖 비난과 모진 모욕을 감수해야 했고 상원 부의장직에서도 물러나야 했다.
2 Quartier Latin, 파리 5구와 6구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대학가. 1968년 학생운동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3 Palais des Tuileries, 파리 루브르궁 서편, 루브르궁의 남북 갤러리 사이에 있었던 궁전.
4 마티외 드레퓌스(Mathieu Dreyfus),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형으로, 공장을 운영하던 실업가였던 그는 동생에게 저질러진 '사법적 오판'을 확신하고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동분서주한다.
5 쉐레르-케스트네르가 상원에서 드레퓌스의 무죄라는 사실과 그 사실을 확신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거센 비난과 무관심뿐이었다.
6 그는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다는 이유로 상원 부의장직의 재임 요청을 거부당했다.
7 나폴레옹 1세 때 제정, 공포된 프랑스 민전법('나폴레옹 법전'이라 불린다). 법 앞에서의 평등, 취업의 자유, 신앙의 자유, 사유재산의 존중, 계약의 자유 등 프랑스혁명의 성과를 반영하고 있으며 근대 법전의 기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