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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오노 후유미 (엘릭시르, 2014)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 10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야마다 아키히로 일러스트/엘릭시르


장 중요한 것은 천제의 뜻이다. 열두 나라의 이야기를 하나씩 돌아가며 그린다손 치더라도, 종국에는 일체를 아우르는 하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마무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단 설정은 천제가 열세 나라를 만들어 그중 하나를 황해(黃海)와 봉산(蓬山)으로 삼아 여신(女神)과 여선(女仙)의 땅으로 만들고 남은 열두 나라에 각각의 왕을 내려 국가의 기틀을 이룬 것에서 출발하는데, 천제가 내린 궁극적인 뜻은 만민의 안녕이 곧 국가의 행복이라는 점이다. 더구나 오노 후유미가 불교학을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이 십이국기 시리즈는 일견 불교의 세계관과 닮아있다고 할 수 있을는지도. 그도 그럴 것이 소설 말미에 드러나는 십이국의 탄생에 앞서 천제가 염려하고 있던 것, 즉 천지의 섭리를 업신여기고 인도를 소홀히 하여 비탄에 잠긴 세상을 바로잡아 태곳적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함인 까닭이다. 이와 비슷한 불교의 존재 인식 역시 현세의 삶이 모두 고통이라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불유쾌한 세상을 다스리는 열두 나라의 왕은 선출직이 아닌, 기린(麒麟)이라는 순결무구의 존재에 의한 임명직이다. 기린의 입장에서 보면 왕은 용병이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언제나 왕 옆에서 그/그녀를 보좌하며 복종하지만 도를 벗어나면 직언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왕이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 기린은 병들어 죽게 되고(실도, 失道) 기린이 죽으면 왕의 목숨도 함께 사라진다. 이를테면 국민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통치를 잘못하게 되면 국민이 병을 얻게 되고, 그렇게 되면 대통령 또한 시름시름 앓게 되는 것이다. 이는 현실에서라면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이다. 최근 시리즈 첫 번째로 출간된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를 시작으로 느끼게 되듯, 이 십이국의 세계가 지금의 현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는 것일지 아니면 그럼에도 이런 세계라면 오늘날의 그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호소와 더불어 대리만족을 느끼게 할 심산인 것인지가 조금씩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나 더, 이 십이국의 세계와 인간세계를 가로막는 것으로 허해(虛海)라는 바다가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잇는 일종의 웜 홀과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딘지 모르게 현세와 내세 ㅡ 현실과 이상(더불어 이 둘의 괴리) ㅡ 를 끊임없이 연결하고자 하는 '유(有)의 부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바로 '아무것도 없음(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