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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크라임 이펙트』 이창무 (위즈덤하우스, 2014)


크라임 이펙트 - 8점
이창무 지음/위즈덤하우스


무라비가 가장 오래된 법전이 아니라 우르카기나(urukagina)라는 것이 이미 기원전 2350년경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전하지는 않으므로 그보다 뒤진 우르남무(ur-nammu) 법전이 또 존재한다. 이 역시 함무라비 쪽보다는 빠른데, 법전에 적혀있는 취지가 놀랍기 그지없다. 「공정하고 불변하는 책임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 고아가 부자의 먹이가 되지 않고, 미망인이 강한 자의 먹이가 되지 않고, 1셰켈을 가진 이가 1미나(60셰켈)를 가진 이의 먹이가 되지 않도록…….」 저 오랜 옛날에도 지금과 같은 생각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게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내려온 사회적 논의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점이 뜨악할만한 현상이다. 『크라임 이펙트』는 역사의 어느 순간 그 흐름을 바꾸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범죄를 설명하고자 한다. 특히 책 절반쯤에 다다라 등장하는ㅡ 범죄자는 이미 결정되어있다는 이야기는 또 다른 측면에서 흥미로운 부분이다. 19세기 후반 어느 사회학자가 뉴욕 구치소에 수감된 재소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유달리 특정 성(姓)을 가진 이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결과 재소자들과 직접적 혈연관계가 있는 29명 가운데 17명에 이르는 자들이 범죄 전과가 있었다.(p.131) 훗날 그는 범죄의 원인으로 가난과 질병, 그리고 '유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른 범죄학자는 이 결과에 근거해 범죄자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동시에 아이를 갖지 못하도록 불임수술을 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앞서 유전을 범죄 원인의 하나로 제시했던 사회학자가 자신이 조사했던 특정 가문의 범죄로 인해 낭비된 사회적 비용이 130만 달러에 이른다고 강조한 덕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지불된 세금이 범죄자에게 쓰인다는 사실에 분개한 납세자들의 호응이 있었던 까닭이다ㅡ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2천만 달러(한화 약 210억 원)가 넘는다고 한다. 이와 조금은 다르지만 엇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70년대 말의 중국이다. 당시 10억에 가까운 인구로 인해 중국 정부는 인구 억제를 위해 한 자녀 정책을 시행했다. 강요에 의한 낙태와 불임수술도 자행되었다. 반발이 이어지자 80년대 중반 정부는 첫째 자녀가 여아이거나 장애아인 가정에는 둘째 아이를 허용하는 쪽으로 정책을 수정하기에 이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여아'와 '장애아'이다. 위에서 말한 범죄와 유전의 관계, 즉 우생(優生)과 관련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으로 이 책에 드레퓌스 사건이 담겨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ㅡ 최근 연일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퍼거슨 사태와 그에 따른 시위, 다시 이어지는 백인 경찰에 의한 흑인 시민의 사망을 보면,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는 이유의 하나인 인종문제 역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책이 다루는 이야기는 실로 다양하다. 마녀사냥, 십자군전쟁, 부패 경찰, 아편전쟁, 금주법, 케네디 암살, 9.11 테러,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해킹…….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범죄의 역사가 켜켜이 쌓이면 쌓일수록 그것이 개인적인 범죄이거나 반대로 국가와 국가 사이의 거대 범죄― 이런 경향으로부터 자본의 문제로 옮겨가고 또 그러한 경우의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진다는 거다. 조금 다듬어 말하면, 문명의 풍요가 범죄의 유형을 바꾸어놓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를테면 은행이 만들어져 은행 강도가 생겨나고 보험이 있어 보험사기가 발생하며 사이버 범죄 역시 정보화 사회라는 새로운 문명이 잉태했다는 것.(p.305)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깨진 유리창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범죄와 범죄자를 막론하고 제로 톨러런스를 실현하지 않으면 거리와 도시를 넘어 사회 전체는 순식간에 구경꾼들의 천국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