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은행나무, 2014)

마르셀 프루스트 : 독서에 관하여 - 8점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유예진 옮김/은행나무


수 인권 선언이란 것이 있는데, 그중 제7조 항목에 이런 말이 있다. 「백수는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향유할 권리가 (...) 사회는 백수의 문화생활 진작을 위해 노력할 책무가 있다.」 나도 백수이긴 하나, 또 하물며 백수라 해도 문화생활을 누릴 만한 정신적 여유는 가져야 온당하다. 특히 나는 책에 대해서는, 그것은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공공의 미(美)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프루스트가 독서에 관해 설파한 것과 달리 내겐 '잃어버린 10년'이 존재한다. 십대 중반부터 이십대 중반 즈음까지, 교과서와 강의에 쓸 것이 아니면 책을 거의 읽지 않았다. 읽지 않았다는 것은 두루뭉술한 표현이어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 한 권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아주 고리타분하고 청맹과니 같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인데, 지금 돌이켜보면 꽤 무서운 일이었음을 인정하는 바이다. 나는 중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도서관이란 것을 처음 보았고 그때부터 그 언저리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규모가 더 큰 도서관이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던 이 습성은 내게 한 가지 우울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이 세계에 있는 책, 내가 읽고 싶은 모든 책을 죄다 내 방에 들여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장소는 물론이거니와 경제적 입지로 보건대 어느 쪽도 충족하지 못했던, 책이란 것은 모름지기 빌려보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졌을 시절의 발상이었다. 때문에 나는 일종의 리스트를 작성하게 되고 그때부터 부러 책을 읽지 않았다(일종의 시위였던 걸로 기억한다). 작가와 책 제목, 출판사, 출간연도를 적는 메모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물론 그 시절과 달리 꽤 책을 많이 읽고 있다. 내 '잃어버린 10년'이란 그때의 우울감에서 발생했다. 지금 당장 여력이 없으니 리스트를 만들어 어른이 되었을 때 모조리 다 읽어보자, 하고 생각했던 거다. 그런데 웬걸, 나는 절판이라는 개념을 알지 못했다. 대체 한번 만들어진 책이 왜 사라진단 말인가? 어릴 적 만들었던 메모를 지금 펼쳐보면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책들이 부지기수다. 누구도 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아줄 수는 없었다. 바보 같으니라고.



프루스트가 쓴 「독서에 관하여」는 실은 존 러스킨의 책을 번역하며 쓴 역자 서문이다. 서문치고는 꽤 장문이나 그가 책과 독서라는 행위에 관해 적어놓은 생각들이 정겹기만 하다. 「독서가 그것 없이는 들어가지 못했을 마법의 열쇠로서 우리 내부에 위치한 장소들의 문을 열어주는 존재로 남아 있는 한 독서는 우리의 삶에 유익하다.」 도대체가 나는 스스로 내 인생에서 10년(혹은 그보다 더 오랫동안)이라는 시간을 지우고 뭘 했단 말인가? 내 감성에 불을 켜 줄 마법의 열쇠를 스스로 마다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프루스트가 독서를 중단하고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만 했던 길디긴 점심식사를 저주하는 것만큼이나 나 역시도 독서에 관한 한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누군가 말을 걸어 독서를 방해하는 것에서 그가 보였던 반응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프루스트의 말대로 독서란 적어도 마음에서 우러나온 우정이고 그 대상이 죽은 자, 사라진 자라는 점은 사심 없음을 증명해 감동적이기까지 한 것이므로ㅡ 덧붙여 그는 독서를 추한 면을 보이는 다른 우정들에 비해 자유롭다고 말한다. 책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독서라는 행위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자신과는 다른 영혼이 개입하되 혼자 있을 때 그것을 받아야 하는 것(p.37), 그리고 게으른 정신을 가치 있는 세계로 영구히 끌어들이는 임무를 띠는 것이다.(p.35) 내가 지나칠 정도로 수상쩍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만 같은 '잃어버린 10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으며, 내 게으른 정신은 여전히 그때의 어린 꼬마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다. 어릴 적 프루스트는 길었던 점식식사를 뒤로하고 마침내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야 만다. 그러고는 자신의 안에서 오랫동안 벌어진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해 방 안인지 밖인지 어디에 시선을 고정시켰는지 모른 채로 일어나 침대를 돌며 걷는다. 내일이면 잊힐 페이지 위의 어느 이름에 불과할 존재들이라고 해도, 자신이 탐닉하던 책을 무사히 끝장 보았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하고 대단한 일인가! 「우리의 어린 시절을 이루는 날들 중에는, 우리가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고 여겼거나 좋아하는 책과 같이 보낸 날들만이 어쩌면 진정으로 충만하게 보낸 날들이다.」 프루스트가 쓴 글의 첫머리이다. 맙소사, 내게 있어 진정으로 충만했던 날들은 언제였었나?



사족) 그런데 참 희한하지. 어째써 한번 빌려준 책은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