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수치심』 마사 너스바움 (민음사, 2015)

· 책_롱 2015. 5. 1. 15:09

혐오와 수치심 - 8점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민음사


만 폴란스키의 《혐오》에선 남성 혐오증을 가진 여주인공이 (말 그대로) 남자들을 죽인다. 너스바움에 의하면 혐오라는 감정에 담긴 핵심적인 사고는 자신이 오염될 것이라는 생각이며, 혐오의 감정은 자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거부를 표현한다.(p.186) 역시 그녀는 '분개'가ㅡ 우리는 취약한 존재이므로ㅡ 우리가 마음 쓰는 대상이 어떤 부당한 행위로 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반응이라면, '혐오'는 자기기만과 헛된 열망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라고 본다. 폴란스키 영화의 남성 혐오증을 가진 여자와 같이 『혐오와 수치심』에도 비슷한 사례가 등장한다. 그는 야영지에서 섹스하던 레즈비언 둘을 총으로 쏜 남자로(한 명 사망, 한 명 중상), 일급 살인 혐의로 기소된 뒤 리즈비언의 섹스에 주체할 수 없는 혐오와 불쾌함에 휩싸였다며 자신의 죄는 과실치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성적인 사람은 그냥 지켜보는 것을 멈추고 그 자리를 떠났을 것이라며 두 여성에게는 피의자를 도발하려는 행위가 없었다는 의미의 결론을 내렸다. 나는 이 판결이 온당하다고 본다ㅡ 또 여전히 '도발'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가 지극히 불확실하고 모호하다고도 생각한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너스바움이 수시로 사용하고 있는 '이성적인 사람', '사회의 평균적인 구성원', '클래펌 사람(man of the Clapham omnibus)'이라는 표현이다. '클래펌 사람'은 클래펌(처음 사용했을 당시 일반적인 런던을 대표하는 평범한 통근 교외 지역) 통근 버스를 타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영국 민법에서 이성적으로 교육받은 일반적인 보통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이를테면 잭, 질, 마이크, 낸시와 같이 별 의미 없는 필부필부). 그런데 위에서 말한 '도발'과 같이 '평균적인 사람'도 보기에 따라서는 꽤 모호한 속성을 띤다. 물론 클래펌 사람은 포르노 영화나 소도미, 시체 성애 행위를 찾아다니는 부류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여겨지긴 한다.(p.250) 그런데 책에 소개된 음란물에 대한 법률적인 기준과 설명(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 확립된)에는 바로 이 '동시대의 사회 기준을 적용하는 평균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 바로 외설과 음란에 대해 '호색적인 관심'과 '명백히 불쾌한' 것이라고 말이다. 당시 대법원 판사는 '음란한'에 대한 정의로 「혐오스러운 느낌을 주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에 완전히 거슬리는…… 감각이나 취향 또는 고상함에 거슬리는…… 혐오스럽고, 더러우며, 메스꺼운……」이라고 옥스퍼드 영어사전 등에 실린 내용을 인용했다.





……혐오는 (인지된) 위험과도 다르다. (독버섯과 같이) 위험한 대상은 그것을 섭취하지만 않는다면 같이 있어도 아무렇지 않지만, 혐오스러운 대상은 그렇지 않다. 또한 독을 제거한 독버섯처럼 위험이 제거되면 위험한 대상은 먹을 수 있지만, 혐오스러운 대상은 모든 위험이 제거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혐오스러운 것으로 남아있다.


ㅡ 본문 p.168




책에서 혐오는 이질적인 것으로 여겨지는데(너스바움은 혐오를 자신의 몸 안과 밖이라는 경계로 나눈다), 역자가 적은 예시에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지적장애인이 등장한다. 거기서 나는 그가 내게 가까워질까 봐서 일정하게 거리를 둔다. 그러나 이런 장애인에 관련된 또 다른 요소, 그리고 너스바움이 이야기하려는 또 하나의 명제가 바로 '수치심(자신의 약점이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고통스런 감정)'이다. '선천적' 혹은 '핸디캡'이란 단어를 써 가며 사회는 그들에게 낙인을 찍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인간은 시력이 안 좋거나 무릎이 약하거나 건망증이 있는가하면 결국에는 또 죽을 운명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사람이 엄청난 노력을 해 특정 성취를 이루더라도 그것에 대해 '정상적인' 일반들에게 똑같이 요구하지는 않는다. 요컨대 4분에 1,600여 미터를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사회 전체가 그런 사람만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하지는 않는다는 거다(대신 우리에겐 자동차나 버스가 있다).(p.553) 분명 사회는 장애인 혹은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사람만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지는 않았다(자동차는 일반적이고 휠체어는 일반적이지 않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불편한 장애인을 비정상적이라고 낙인찍는 인식 자체가 혐오스럽게 느껴진다. 장애인은 사람 혹은 도구에 의존해야 하는데,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혹은 덜 가진 사람)은 그보다 덜 의존할 뿐이라는 거다ㅡ 이러한 낙인찍기는 성 범죄자의 신상 공개가 타당한지 여부에서도 논의될 수 있다(심심찮게 벌어지는 인종차별도 매한가지다).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훌륭한 저작 『노년』에서도 이러한 '혐오'와 '수치심'이 이야기되고 있다. 노년(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에 접어든 사람들이 하는 섹스나 연애는 때때로 추하다고 인식되는 것이다. 또 젊은이(노인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단어)들은 노인들이 기계 같은 도구를 잘 다루지 못하는 것을 이용하기도 한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서 쩔쩔매고 있으면 직접 도와주기보다는 말로만 설명하고, 그러면서 그들이 우왕좌왕하는 걸 실컷 구경한 뒤 한참 뒤에야 거들며 타박하는 거다ㅡ 여기에는 혐오(드러내기)와 수치심(주기)이 잘 나타나 있다. 『혐오와 수치심』이 특이한 건, 이 두 가지 개념을 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법적 근거 위에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혐오가 어떤 행위를 불법으로 단정 지을 수 있는 중심적 요소가 되어야 하는가 하고.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와 같이 말이다. 잘못과 잘못을 저지른 대상을 구분 지어 존중하라는 은유임은 알고 있으나 이러한 인식은 쉬 이루어지지 않는다(나 역시도).





낙인찍힌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낙인찍는 행위로 엄청난 피해를 본다. 때때로 그들은 자신의 잘못이 없는데도 법적 측면에서나 시민으로서 불리한 조건에 처하게 된다. 동의하지 않는 제3자에게 아무런 위해를 주지 않음에도 종교나 생활양식이 소수자라는 이유로 법 아래에서 차별을 받는 것이다.


ㅡ 본문 p.411




(여기 다른 차원의 좋은 예시가 있다. 죄인을 수레에 태워 저자를 한 바퀴 빙 도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진 자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증폭시키는 동시에 죄인들에겐 수치심을 안긴다.) 레즈비언을 죽인 사례와 같이 두 여성은 피의자에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고, 그들은 (재판부에 따르면) '합법적인 도발'을 하지 않았으며, 피의자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공격적 행위도 하지 않았지만, 법정에 선 남자는 그들로부터 혐오감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그렇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으로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면 우리는 그를 처벌할 수 있는가 하는 녹록하지 않은 문제가 간섭하게 된다. 이 '혐오'에 대한 인식이 늘 법적 잣대 위에서 놀거나 늘 충분히 인정될 만큼의 적확성을 띤다면 두 레즈비언에겐 피의자에게 혐오감을 주었다는 죄명이 씌워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피의자의 정당방위 어쩌고 하는 등의 이야기는 차치하고)ㅡ 그런 인식의 바탕에서 '클래펌 사람'이라는 표현 또한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너스바움이 혐오와 수치심에 우려를 드러내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배적 집단과 구성원들이 예속된 집단과 그 구성원들에게 표출하는 불안감과 혐오는 결과적으로 차별을 불러일으키고, 또한 예속된(하부) 집단에 통제력을 가해 낙인을 줌으로써 지배 집단은 '정상'이라는 편안함을 안겨 주는 허구를 통해 더욱더 효과적으로 자신이 지닌 불안을 숨길 수 있기 때문이다.(p.603) 그러므로 법은 일정한 위해 형태를 대상으로 해야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주는 행위의 경우에만 규제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우리가 타인이 겪는 다양한 고통과 슬픔 등을 공감할 수 있다면 동시에 혐오라는 감정에 대해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가능하긴 한데, 이것들을 나열해 놓고 선을 하나 그어 일거에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바로 생각해볼 문제다(분노, 동정, 의존 또한 마찬가지). 지배하기보다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를 즐길 수 있는 능력, 자신(은 물론이거니와)과 다른 사람의 불완전성과 동물성, 유한성을 인정할 수 있는 능력ㅡ 인간 삶에 내재된 깊은 어려움을 고찰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할 일일 테니까.(p.623)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