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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황금가지, 2015)

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 8점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황금가지


리어티는 셜록 홈즈 시리즈를 종결지을 수 있는 좋은 방편이었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만큼 무지렁이이면서도 실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인 사람을 끝장내기엔 모리어티만한 정도의 설정은 불가피했을 거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그만이 홈즈에 대적할 만한 인물로 그려졌고 동시에 영영 셜로키언들의 미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을지도(모리어티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둥, 실은 범죄자가 아니라는 둥, 홈즈의 배다른 형제라는 둥 별의별 이야기도 난무한다).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은 애설니 존스 경감과 핑커턴 탐정 사무소(도일의 『공포의 계곡』에서도 등장한다)의 프레더릭 체이스 콤비를 내세워, 홈즈와 모리어티의 마지막 대결이 이루어졌던 라이헨바흐 사건 이후를 다룬다. 홈즈와 왓슨 없는 셜록 홈즈 시리즈이며 진행자는 왓슨이 아닌 탐정 사무소의 체이스. 이야기는 모리어티가 홈즈와 함께 폭포에서 떨어지기 전 편지 한 통을 받았다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여기에 모리어티에 버금갈 만한 클래런스 데버루라는 악명 자자한 인물이 떠오르고, 존스와 체이스 콤비는 소설 끝까지 그자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그리고 기어이 모리어티 시신의 재킷에 비밀스레 꿰매진 솔기를 뜯어 모종의 쪽지를 발견하는데, 내용은 당연히 대문자와 소문자로 이루어진 수수께끼 같은 암호문. 클래런스가 모리어티를 만나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 그의 얼굴은 알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한 존스 & 체이스 콤비는 급기야 모리어티 흉내를 내며 약속 장소로 나가지만 '런던탑에서 날아오른 까마귀가 몇 마리였는가?' 라는 수상쩍은 암구호 앞에서 낭패를 보고, 이어 경시청 폭발 사건, 존스 경감의 딸 납치, 치외 법권에 가로막힌 끕끕수, 과거 홈즈 시리즈에서 다루어졌던 다종다양한 트릭의 차용 등이 어지러이 얽히고설킨다. 홈즈라 하면 나는 일단 가스등과 마차가 떠오르고 호로비츠의 소설에서도 그 같은 풍경을 묘사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이는데(다소 폭력적이거나 얌체 같고 추잡한 짓거리를 일삼는 인물의 행동 탓에 뤼팽의 냄새도 살짝 풍기기는 하지만), 특히 개인적으로 가스등이 나간 상태에서 불을 뿜으며 난사되는 총격, 점멸하면서 앞뒤 분간이 어려운 시각적 분위기와 그 속에서 또다시 생겨나는 칼잡이의 의문스런 행동이 가장 마음에 든다. 결말은, 글쎄, 기막힌 반전이 준비되어 있긴 하나 호불호는 극단적으로 나뉠 것만 같다. 나는 나름대로 괜찮은 생각이라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으며, 선한 자는 더욱 선하고 악한 자는 더욱 악하게, 라는 말을 적용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보았다. 잘 만들어진 패스티시는 원작을 조악하게 난도질하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