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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페스트』 알베르 카뮈 (열린책들, 2014)

페스트 - 10점
알베르 카뮈 지음, 최윤주 옮김/열린책들


뮈가 가졌던 알제리나 나치에 대한 생각은 저쪽으로 제쳐 두고 그저 재난 소설로서의 『페스트』를 읽고 싶었다. 직간접적 영어(囹圄) 생활 속에서 불특정의 사람들이 병들고, 죽고, 시시껄렁한 대화를 주고받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에 탄복하고, 타인의 불행하지 않음에 화를 낸다.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도 닮아 있는데, 실제로 리유의 한 발짝 떨어진 서술과 진노 선생 집에 얹혀사는 이름 없는 고양이의 깨달음은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전염병 출현, 심각성 대두, 안정기, 소설은 대략적으로 이 구조에 따라 움직인다. 당국은 도시를 폐쇄하고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려 하나 이미 늦었고, 병명이 공포되자 사람들이 두려움에 빠지긴 했지만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며, 또 어김없이 종교가 끼어들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타인의 괴로움에 기꺼워하던 아무개는 전염병 확산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자 다시금 자기 혼자만이 고통에 빠져있다고 여겨 이젠 그 스스로가 전염병과 같은 불행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해하려 한다. 특히 랑베르의 인물상이 흥미롭게 다가오는데, 그는 개인적인 이유로 폐쇄된 도시를 빠져나가고자 하지만 결국 마음을 바꾸어 리유(의사)를 돕기 때문이다. 인간 자신을 믿어야 한다? 이런 고담준론 같은 명제가 현실에 적용되기란 요원할는지 모른다. 『독감』(사이언스북스, 2003)을 쓴 지나 콜라타는, 저 옛날 아테네를 덮친 전염병 기록을 쓴 투키디데스를 인용한다. 「전염병은 격심한 무절제와 방종을 낳았다. 이제 사람들은 예전에는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던 일을 공공연하게 시도했다.」 그때와 지금의 의학 수준과 사고방식의 상이함은 차치하고라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구분하기 힘들다. 소설 속의 시민들도 탈출할 수 없는 도시 안에서 영화와 술에 빠져 피로와 죽음의 고통을 잊으려 한다. 질병을 가지고 설교하는 자, 건강 증명서를 써주지 않는 의사를 비난하는 자, 혼란스런 틈을 놓치지 않고 암거래에 손을 대는 자, 이런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 자. 이제 불행은 비현실에서 이편의 현실 속으로 편입된 지 오래고, 작중 타루라는 인물의 '죽음 권하는 사회'에 관한 환멸에 가까운 폭로만이 허위허위 공기 중에 흩뿌려진다. 관찰, 그리고 관찰. 『페스트』는 끊임없는 관찰로 사람들 앞에 거울을 들이민다. 그러므로 이것은 더 이상 추억에 머무르지 않고 기록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