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엘릭시르, 2014)

· 책_롱 2014. 12. 12. 13:11


마성의 아이 - 10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야마다 아키히로 일러스트/엘릭시르


이국기 시리즈 스토리상의 출발점이라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엄밀한 의미로 보건대 그것들의 전사(前史)를 다루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상) 시리즈 2편인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 더군다나 (#0이라는 넘버링이 매겨져) 『마성의 아이』의 플롯으로 인해 온전한 십이국기 세계의 모태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마성의 아이』를 십이국기 시리즈의 프리퀄로 보는 것은 타당할는지도 모른다. 『마성의 아이』는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판타지세계의 비중이 낮다. 오롯한 판타지의 묘사보다는 다른 세계가 현실에 간섭하는 것에서 오는 공포나, 여기 등장하는 다카사토 ㅡ 십이국 세계에서는 다이키(泰麒) ㅡ 를 사람들이 앙팡 테리블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다르다. 하지만 교생 히로세가 어릴 적 사경을 헤맨 뒤 다른 세계를 보았다는 설정과 뿔을 잃은 채 인간세계로 돌아온 다카사토를 이해하는 인물이 히로세 본인이라는 점은, 이야기 말미로 갈수록 가미카쿠시(神隠し)와 맞물려 점차 현실세계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인다. 가미카쿠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이 (신에 의해)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을 말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에서 볼 수 있듯 일반적 의미에서의 행방불명(실종)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가미카쿠시의 당사자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ㅡ 부러 배를 기울게 해 거꾸로 뒤집자 바다 밑이 아닌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ㅡ 장면에서처럼 자신이 살아오던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목도하게 된다. 『마성의 아이』에 등장하는 다카사토가 바로 이런 가미카쿠시(본 시리즈 2편에 해당하는 내용)를 경험한 뒤 기억을 잃은 채 현실로 복귀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까닭에 십이국기 시리즈 중 두 번째인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읽기가 선행되지 않으면,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저편에 있는 세계의 용어나 캐릭터에 의해 독서 자체가 방해받을 수도 있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프롤로그로 알려진 『마성의 아이』보다 본 시리즈를 먼저 읽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이번 완전판(신장판) 『마성의 아이(#0)』,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1)』,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2)』를 읽어보니 이런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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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열린책들, 2009)

· 책_롱 2010. 8. 19. 11:48



『전망 좋은 방』은 연애소설이다. 영국사회의 계층갈등과 가치관의 충돌, 물론 이러한 것들도 다루고 있지만 어쨌든 연애 이야기다.



희극이 존재하는 이유는

진실이 존재하는 이유하고 똑같다는 거 말이에요.

ㅡ 본문 p.144



유머러스하고 유쾌하다.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주인공 루시와 사촌 샬럿. 그리고 전망이 좋지 않은 방을 보고 실망한 그녀들에게 '전망 좋은 방'을 양보하는 영국인, 에머슨 부자(父子). 루시는 조지(조지 에머슨)에게 키스를 당하고, 또 당한다 ㅡ 후의 키스는 시간적으로 나중의 일이지만. 루시와 전혀 인연의 끈이 없던 조지인데, 희한하게도 그들 부자를 루시 곁으로 끌어들인 것은 그녀의 약혼자 세실이다. 이로써 세실은 루저가 된다. 조지를 짓누르는 알 수 없는 비관주의(염세주의)는 루시를 만나고서 그를 내쳤다. 조용하고 강단 있어 보이는 조지의 갑작스런 프로포즈는 당당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지만 그의 행동은 그대로 솔직하고 담대한 처사였다. 『전망 좋은 방』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색조는 이유 없는 먹구름, 그리고 잿빛의 모순과 충돌한다. 루시 곁의 사람들은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두려움에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건 모두 모순이며 그들 자체가 모순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샬럿(샬럿이 있기에 『전망 좋은 방』이 존재한다)의 이타심을 가장한 조악한 이기심, 허니처치 부인의 미운 오리의 기질 ㅡ 프레디는 오히려 순수하게 보일 지경이었으니(혹은 진실로 순수할지도).



사람이 서 있으면 그림자가 지죠. 햇빛을 가리지 않겠다고 이리저리 옮겨 봐야 소용없어요. 그림자도 계속 따라오니까요.

ㅡ 본문 p.186



다만 시인들이 이걸 좀 말해 줬으면 좋겠어. 사랑은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말이야. 몸 자체는 아니지만,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ㅡ 본문 p.248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1Q84』처럼 현실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모호한(힘든) 세상(사회). 예의, 격식과 젊은이들의 가치관. 『1Q84』의 덴고 & 아오마메 커플과 엇비슷하게, 조지와 루시는 (진부하게 표현하자면)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이어져 있다. 여기서 작가는 기가 막힌 연민을 이끌어내는데, 오락가락하는 주체는 쉬이 정립되지 않다가 스스로 그 오락가락함을 단번에 정리해 버린다. '루저 세실' ㅡ 사실 그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불쌍한 꼴이 되었으며 오히려 그에게서 연민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그는 정말 신사 그 자체이다 ㅡ 이 조지를 루시 옆으로 대령한 셈이 되었지만 어찌 보면 루시 스스로 그를 부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결자해지인가.


▼ 이 소설로 만들어진 영화 『전망 좋은 방』의 주인공 루시, 헬레나 본햄 카터(helena bonham carter)는 『파이트 클럽(fight club)』의 말라 싱어,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의 주인공 꼬마 찰리 버켓의 엄마, 『스위니 토드(sweeney todd)』의 러벳,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의 붉은 여왕으로도 출연한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영화감독 팀 버튼(timothy william burton)이다. 나는 소설도, 영화도 권하는 바이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