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마성의 아이』 오노 후유미 (엘릭시르, 2014)


마성의 아이 - 10점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야마다 아키히로 일러스트/엘릭시르


이국기 시리즈 스토리상의 출발점이라 보기도 어려울뿐더러 엄밀한 의미로 보건대 그것들의 전사(前史)를 다루고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상) 시리즈 2편인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구조, 더군다나 (#0이라는 넘버링이 매겨져) 『마성의 아이』의 플롯으로 인해 온전한 십이국기 세계의 모태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마성의 아이』를 십이국기 시리즈의 프리퀄로 보는 것은 타당할는지도 모른다. 『마성의 아이』는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판타지세계의 비중이 낮다. 오롯한 판타지의 묘사보다는 다른 세계가 현실에 간섭하는 것에서 오는 공포나, 여기 등장하는 다카사토 ㅡ 십이국 세계에서는 다이키(泰麒) ㅡ 를 사람들이 앙팡 테리블의 모습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다르다. 하지만 교생 히로세가 어릴 적 사경을 헤맨 뒤 다른 세계를 보았다는 설정과 뿔을 잃은 채 인간세계로 돌아온 다카사토를 이해하는 인물이 히로세 본인이라는 점은, 이야기 말미로 갈수록 가미카쿠시(神隠し)와 맞물려 점차 현실세계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인다. 가미카쿠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이 (신에 의해) 현실에서 사라지는 것을 말하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에서 볼 수 있듯 일반적 의미에서의 행방불명(실종)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가미카쿠시의 당사자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ㅡ 부러 배를 기울게 해 거꾸로 뒤집자 바다 밑이 아닌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ㅡ 장면에서처럼 자신이 살아오던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를 목도하게 된다. 『마성의 아이』에 등장하는 다카사토가 바로 이런 가미카쿠시(본 시리즈 2편에 해당하는 내용)를 경험한 뒤 기억을 잃은 채 현실로 복귀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까닭에 십이국기 시리즈 중 두 번째인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읽기가 선행되지 않으면, 소설 후반으로 갈수록 저편에 있는 세계의 용어나 캐릭터에 의해 독서 자체가 방해받을 수도 있다. 즉 아이러니하게도 프롤로그로 알려진 『마성의 아이』보다 본 시리즈를 먼저 읽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출간된 이번 완전판(신장판) 『마성의 아이(#0)』,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1)』,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2)』를 읽어보니 이런 생각이 더욱 짙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