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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을유문화사, 2012)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 - 6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이혜승 옮김/을유문화사


「창조의 권리만큼 중요한 것이 비평의 권리다.」 이 뒤로는 '이것은 사고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줄 수 있는 가장 풍요로운 선물……'이란 말이 붙는다. 지당하고 지당한 말이다. 거기다가 나는 대부분의 쾌감은 사물과 추상의 사후 해석에서 온다고 믿기 때문에 비평의 권리와 자유야말로 인간 감정을 히말라야 산맥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본다. 일단 역사와 달리 문학은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보다는 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해석의 여지가 풍부하다. 이 문학적인 서사로 보건대 문학과 비문학을 구분하는 것 자체도 고역이거니와 대체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을 문학으로 간주하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 역시 답이 있다면 '문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클리셰가 문학의 본질을 말해주는 것은 아닐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코프의 러시아 문학 강의』는 작가의 본의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다. 다른 작가들과 작품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지만 이것은 분명 '나보코프의 문학관(이랄까)'이다. 책에 포함된 강의록과 에세이를 보면 더욱 그렇게 생각된다 ㅡ 물론, 정상인보다 미친 사람을 훨씬 선호하는 도스토예프스키(그의 말에 따르면)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를 '슬로 모션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추리물이자 시끌벅적한 스릴러'라고 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장황함에는 좀 지겨운 감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이 말들을 물리치는 건 '창조의 권리만큼 중요한 것이 비평의 권리'란 말씀이니, 가히 모든 패를 뒤엎을 수 있는 조커가 아닌가! 그러거나 말거나(라는 건 장난이고) 여기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중요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과연 어떤 대답이 「문학이란 무엇인가」란 물음을 소거시킬 수 있을까. '문학성'은 무엇보다도 문학을 다른 목적에 사용되는 언어와 구별시키는 언어의 조직화에 있다고 한다. 문학은 언어 그 자체를 전경화시킨 언어이다(낯설게 하기?). 언어를 낯설게 만들어서 그것을 독자에게 내민다 ㅡ 「자! 내가 언어야」라고 하면서(조너선 컬러 『문학이론』). 음, 무슨 의미인지는 알겠으나 나는 언어의 전경화가 언제나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다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게다가 '미학적 대상'으로서의 문학이 있으니까 말이다. 나처럼 순수하게 (넓은 의미로서의)재미가 있으면 읽는 독자가 분명 존재하므로. 그럼 뭐가 되느냐. 「'고상함'은 레이스 달린 천박함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이는 단순한 조악함보다 더 나쁘다. 사람들 앞에서 트림을 하는 것은 무례지만, 트림을 하고 나서 '실례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고상한 것이고, 그래서 더 천박하다.」 나는 이 말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를 구성하는 분자를 중시하는 고리키가 있는가하면 세세한 입자가 아닌 파동을 그리는 체호프의 세계도 존재하지 않나 ㅡ 비록 이 책이 러시아 문학만을 다루고 있다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