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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비행공포』 에리카 종 (비채, 2013)


비행공포 - 8점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비채


자가 말한다. 그렇게 나한테 적대적인 개자식은 처음 봤어. 혹은, 여보, 미안하지만 이 잘생긴 남자하고 나가서 섹스 좀 하게 자리 좀 피해줄래? 남자가 말한다. 이런 엉덩이는 처음이야. 혹은, 당신의 집게손가락이 필요해요, 집게손가락하고 마주 붙일 수 있는 엄지손가락도. 이사도라의 패턴은 부코스키의 『Women』도 아니고 알 켈리식 「Sex Me」도 아니다. 그렇다고 눈이 왕방울만 한 밀라 쿠니스가 옷을 벗는 《프렌즈 위드 베네핏》은 더더욱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가가 되려는 남자와는 절대 얽히지 말라는 주드의 말은 틀렸다. 물론 예술가가 되려고 애쓰는 자들은 미친놈일 게 빤하지만 정신분석의보다는 낫다는 것 또한 익히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약탈로 가득 찬 곳이니 더 빨리 먹으라는 잠언만이 『비행공포』에서의 그녀의 역할을 잘 알려준다. 문제는 이사도라가 원하는 신비의 제2파운데이션이 어디에 있는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그렇다면 그녀의 방정식은 대체 어디에서 찾을 수 있나? 포르노에는 다음과 같은 널리 알려진 패턴이 존재한다. ①과외 여선생이 있다. 학생은 모르는 문제가 있다고 칭얼댄다. 여선생이 알려 주겠다며 왕가슴을 들이밀고 학생의 옷을 벗긴다. ②근육질의 트레이너가 있다. 여자에게 운동법을 알려 주며 여기저기를 더듬는다. ③수도관이 고장 난 집 여주인이 정비공을 부른다. 정비공은 맨몸에 멜빵바지만 입고 여자가 혼자 있을 때 집을 방문한다. ④여자 환자가 병원에 간다. 의사는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며 환자에게 상의를 벗기를 요구한다. ⑤친구네 집에 놀러 간다. 친구는 없고 그 누나가 샤워를 막 끝낸 채 머리를 말리고 있는 것을 마주한다. ⑥여직원이 사장실에 들어간다. 사장이 결재서류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 준다며 몸을 부딪쳐 온다ㅡ. 내가 보기에 여기에는 그녀의 교집합을 보여주는 밴 다이어그램은 없다. 다만 저들처럼 차등을 두지 않고 똑같이, 같은 것을 하며 살아나가라는 명제만 있을 따름이다. 요는 어떤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국엔 섹스할 뿐이니까 말이다. 오르가즘을 찾아 헤매는 비행에의 공포, 열정적으로 땀 흘리는 자들은 언제나 옳다는 관념, 매캐한 공기 속에서 맹동주의에 빠져보는 것. 이사도라는 언제든지 준비가 되어 있는 여자이지만 보편적인 현상의 범주에서는 한쪽 발을 빼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남들과는 다르다는 위험한 발상을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이 세계가 돌아가는 모양새는, 어름어름 넘어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쥐나 새는 물론이고 침묵조차 다 알고 있는 메커니즘을 띠고 있는 까닭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부족한 것이 바로 '예의'라는 것에는 이쪽도 할 말이 없다). 이사도라는 적어도 ㅡ 저 옛사람의 말을 빌려 떠들어대자면, 노예적이지 않고 자주적이고, 보수적이지 않고 진보적이며, 은둔적이지 않고 진취적인데다가 쇄국적이지 않고 세계적인 동시에 허식적이지 않고 실리적이다. 그러나 단 하나, 과학적이지 않고 공상적이기 때문에 뼈와 살들의 환각 잔치에서 헤어날 수 없는 노릇이다. 그 공상은 이사도라의 세계 안에 갇혀 움직이는 생명처럼 소유자와 같이 커다란 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으나, 그녀가 의식하고 있는 것은 순수하게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이 짓(!)을 그만둘 날이 오기는 할까? 그녀의 눈에 보이는 저 석유의 찌꺼기로 만들어진 도로가 여전히 활주할 수 있는 번들번들함을 과시하고 있는데도? 살랑살랑 걷는 튼튼한 다리와 엉덩이가 감가상각 따위 할 수 없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데도? 글쎄, 그래도, 입놀림으로만 혁명을 하는 인텔리보다는 낫지 않나. 결혼만 하지 않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