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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폼페이』 로버트 해리스 (RHK, 2007)


폼페이 - 6점
로버트 해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랜덤하우스코리아


스키나 미라빌리스, 기적의 저수지. 도시 한 블록 정도의 길이에 반 블록 정도의 폭을 지닌, 낮고 평평한 지붕의 붉은 벽돌 건물로 연녹색의 담쟁이덩굴이 덮인 거대한 지하 저수조.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언제나 부패에 노출되어 있는 수로교는 ㅡ 살베 루크룸! 루크룸 가우디움!(수익이여, 어서 오라! 수익은 기쁨이다!): 이는 「토할 때까지 먹고 먹을 수 있을 때까지 토하자」는 세네카의 말과 궤를 같이하는가? ㅡ 다종다양한 군상을 탄생시키며 폼페이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아니, 실로 후자의 경우는 자연이 내린 메시지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은 짧은 생이다. 감각이 둔해지고, 팔다리가 마비되고 시력, 청력, 걸음걸이는 물론 치아까지, 우리 몸의 영양기관들은 우리보다 먼저 죽어버리지만, 그러한 시기까지 인생의 일부로 간주해야 한다.


ㅡ 본문 p.113




리좀 같은 수도관들이 복잡다단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에 비해 인간의 모양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임자의 부정부패, 몰지각한 졸부, 전세가 역전된 주인과 노예.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수도기사 아틸리우스가 있다. 그가 수도관에서 유황 냄새를 맡은 것은 폼페이가 소멸되기 바로 이틀 전이다. 해리스가 본문에 인용한 화산학 연구 자료에 의하면, 마그마의 움직임은 해당 지역의 지하수면을 막을 수 있으며 그럴 경우 지하수의 흐름 및 온도의 변화가 감지될 것이라 했다. 말 그대로 폼페이를 집어삼킨 것은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이지만, 여기에는 산에 올라 이상 현상을 추적하려는 아틸리우스와 그를 구워삶거나 훼방을 놓으려는 자들이 간섭한다. 바로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만 같던 '물'로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 ㅡ 그 중심에 있는 것이 폼페이의 관료 포피디우스 그리고 그의 노예였다가 귀족으로 변모한 암플리아투스다. 암플리아투스는 과거 지진 피해를 입은 마을의 주인을 잃은 집들을 이용해 사업을 벌여 부를 축적한 전력을 지녔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닥칠지도 모르는 재난에 이번에는 포피디우스도 한몫하여 부패 관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불[火]의 신 불카누스는 이들의 더러운 기대에 분노로 대답한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서기 79년 8월 24일, 화산 쇄설물 등에 의해 폼페이는 뜨거운 가스 구름에 휩싸이고 만다. 파괴된 건물과 압사하거나 질식사한 사람들, 화산암 더미에 파묻힌 거대한 도시. 무엇보다 『폼페이』가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그날의 재앙만을 다룬 것이 아닌 까닭이다. 앞서 언급했듯 욕심 많고 가련한 업자 암플리아투스는, 화산 폭발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장 물이 나와야 한다며 물만 끌어올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말을 지껄인다 ㅡ 더군다나 아틸리우스에게 사업 제안을 하기까지 한다. 사람 사는 곳에 없어지지 않고 늘 있는 것이 폭력의 무리라던 원술의 말처럼(《공공의 적 1-1 강철중》),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과 불가피하게 보이는 그 무엇은 늘 인간의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