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책_롱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 류청 (보누스, 2014)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 - 8점
류청 지음/보누스


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으면 틀린 부분 두어 군데를 바로잡을 수 있었을 테고,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보다 자세한 내용을 담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을 네 개나 매긴 것은 내가 축구에 관해 까막눈이기 때문이다. 다만 축구 클럽의 엠블럼 디자인 자체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맥락인 것이고.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 국가대표의 A매치가 아니면 축구라는 것 자체에 전혀 관심이 없다. K리그는 물론이거니와 프리미어리그, 분데스리가, 프리메라리가 등에도 눈을 두지 않는다. 그런데 웬걸, 언제부턴가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 ㅡ BVB 09 Dortmund ㅡ 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분데스리가는커녕 도르트문트의 경기를 챙겨 보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그들의 엠블럼과 유니폼 그리고 팬들의 카드섹션 이 멋져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심지어 이영표가 한때 도르트문트에 적을 두었던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구글 검색창에 도르트문트를 넣으니 구단 엠블럼이 새겨진 병뚜껑이 나타났다. 어디서 이런 물건이 생긴 걸까. 책을 읽어 보고야 알았다. 1909년 트리니티 유스 소속의 청년들이 팀 보루시아를 창단했는데, 보루시아라는 명칭을 도르트문트 인근 맥주 공장의 이름에서 따왔단다. 엠블럼의 '09'는 당연히 팀이 창단된 연도(1909년)를 나타낸다. 현재 입고 있는 유니폼은 검정과 노랑으로 구성된 줄무늬인데 그래서 그들의 별명은 '꿀벌 군단'이다. 또 얼마 전 팀의 감독인 위르겐 클롭은 지동원의 이름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ㅡ 브랜드 구찌와 발음이 유사한 Gut-Ji(Good-Ji). 도르트문트 홈구장은 8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고 2010/11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거머쥐며 평균 관중 7만9천 명을 넘겼다. 라이벌 FC 바이에른 뮌헨과의 더비는 데어 클라시커(Der Klassiker)라 불리며 경기마다 경찰들을 긴장케 한다(그래 봐야 '엘 클라시코' 등과 다를 바 없는 명칭일 뿐인 게지).







하여간 이런 '토막 상식'이랄까,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은 나처럼 축구 지식이 전무후무하다 할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굉장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나의 팀 전체를 꿰뚫고 싶다면 추천하지 않으리라. 그럴 바엔 차라리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리버풀』, 『첼시』 등의 책이 나을 것이다(모두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오로지 나와 같은 이들에게 적합한, 소소한 흥밋거리를 줄 뿐이다. 이를테면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의 엠블럼에는 범선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맨체스터와 머지 강의 어귀를 연결하는 맨체스터 운하를 상징한다고 한다. 길이 75km의 이 운하는 산업혁명 당시 맨체스터에 번영을 가져왔고, 운하가 뚫리면서 상대적으로 리버풀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당연히 그들의 지역감정은 나빠지기 시작해 맨체스터와 리버풀의 경기는 언제나 거칠기로 유명하다.(p.17) 세리에A의 AS 로마를 보자. 엠블럼에 들어간 황금색은 로마 가톨릭을, 적갈색은 로마 제국을 상징한다. 문양 속 동물과 두 아이는 로마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늑대와 쌍둥이 형제라는데,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알바롱가의 왕 누미토르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 반란을 일으킨 동생 아우물리스는 조카들을 모두 죽이고 형의 조카딸인 실비아마저 신전의 사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군신 마르스와 관계를 맺어 쌍둥이 형제를 낳았는데 두 아이는 죽을 위기를 넘겨 마르스가 보낸 늑대 암컷의 젖을 먹고 자라 이후 쌍둥이 중 하나인 로물루스가 로마를 건설하는 제국의 시조가 된 것이다.(p.259) 2013/14 시즌을 앞두고 함부르크 SV에서 거취를 옮긴 손흥민의 팀 바이어(바이어? 바이엘?) 04 레버쿠젠은 어떨까. 독일을 대표하는 제약 및 화학 기업인 바이엘은 레버쿠젠의 모회사로, 엠블럼에도 그 글자(BAYER)가 십자가 모양으로 교차해 들어가 있다. 클럽과 기업의 이야기는 또 있다. FC 바이에른 뮌헨의 엠블럼에는 바이에른 주의 상징인 아가일 문양이 있는데 이는 자동차 회사 BMW의 것과 같다. 바로 BMW가 뮌헨에서 출범한 탓에 그렇단다……. 뭐,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이렇듯 축구 클럽 엠블럼 하나에는 신화에서부터 지역성, 팀의 성격, 유니폼의 컬러 등에 이르기까지 재미있고 놀라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나는 순전히 도르트문트의 엠블럼과 유니폼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시작했지만, 『유럽 축구 엠블럼 사전』을 통해 다채로운 정보까지 얻을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