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만들다 -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열린책들 |
행복 공화국. 「속담 따라 살기」라는 글에서 에코가 만들어낸 유토피아다. 행복 공화국 사람들은 제목처럼 속담에 따라 행동하며 살았는데 의외로 무척 불행하게 살았다. '배가 익으면 스스로 떨어진다'고 했기에 농업에 위기가 왔다. '일을 급히 서두르면 망친다'는 속담에 따라 모든 차량이 금지되었다. 또 '뜨거운 물에 덴 사람은 찬물도 두려워하므로' 위생 개념이 희박해지기에 이르렀고 '흘러 지나간 물은 이미 소용없다'는 이유로 재활용 시스템이 금지되었다……. 에코는 이를테면 지난 수십 년간 진정한 적이 없던 모국 이탈리아를 불행하다고 적었다. 뉴욕에서 만난 파키스탄 택시 기사와의 대화에서 출발한 그는 키케로와 바그너, 초서, 보카치오까지 이야기를 몰고 간다. 『적을 만들다』의 부제는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인데 사실 책을 펼치면 온갖 '잡학다식'에 넣을 만한 이야깃거리들이 즐비하다. 그러니까 이 학회에서 발표하고 저 잡지에 실은 글들을 모아 한데 묶은 거다. 그렇다고 여든 넘어 노년에 접어든 이 남자를 무시할쏘냐. 처음부터 목차 순서대로 뚝딱 읽긴 했지만, 책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토를 달기보다는 차라리 문단마다 주석을 하나씩 달아두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브라이언 윌슨 말마따나 나는 이런 순간을 원한 게 아니지만(「I just wasn't made for these times」). 즉 『가재걸음』이나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을 읽었을 때처럼 이 대륙 저 대륙으로 뻗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그가 「절대와 상대」에서 언급한 것처럼ㅡ 물은 언제나 섭씨 100도에 끓는다는 사실을 두고, 섭씨라는 걸 먼저 만들고 난 뒤 100이라는 상징성이 큰 숫자에 물이 끓는 것을 맞추기 위해 그렇게 정해 놓았다고 생각해도 좋을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우리는 섭씨 30도 정도가 되면 덥다고 옷을 벗고 섭씨 10도 안팎이 되면 춥다며 옷을 껴입는 거라고 말이다. 물이 끓는 온도가 섭씨 100도가 아니었다면 영하 10도가 되어도 우리가 추위 따위를 전혀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요컨대 이것은 비단 『적을 만들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며 어느 책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비틀어보다가 또 저렇게 꼬아보는 것. 왜 그런가? 그 스스로도 그런 방식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에코의 글은 우리 나름대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그럴 여지가 충분하다. '눈 뜨면 코를 베이니'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