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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그랜드맨션』 오리하라 이치 (비채, 2014)


그랜드맨션 - 8점
오리하라 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비채


뜩 발기된 고층건물인 아파트의 현재성은 어디에서나 똑같다. 한국에서의 아파트는 일본의 '맨션'이라는 개념인데, 건물을 높이 올린 좁은 땅덩어리에 수십 수백 명이 다닥다닥 모여 사는 건 명칭만 다를 뿐 형태나 성격을 보아도 매한가지라 할 수 있겠다. 최대한 가까이 붙어있으면서도 누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몰인식의 집합체. 『그랜드맨션』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초점이 다소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앞서 말한 맨션의 부조화에서 기인한다. 나와 똑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분명 옆방에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ㅡ 그 방을 나와 마주보기 전까지는, 서로의 생김새를 묘사해낼 수 없는 감옥의 죄수들같이ㅡ 그네들은 주차장의 덮개 씐 자동차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며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탄 사람이 같은 층수를 눌러도 본체만체한다. 소설은 여러 개의 단편이 모여 하나의 큰 얼개를 이루는데, 일견 부조리극의 하위범주(란 게 있다면)에 넣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호의 실직자는 소음에 시달리고 105호에 거주하는 노인은 보이스피싱에 속아 넘어간다. 303호 여자는 스토커가 있는 것 같은 불안감에 고민하며 203호 남자는 형편이 궁하던 차에 옆집 할머니의 '장롱예금' 이야기를 엿듣는다. 그런가하면 치매를 앓는 노인과 연금을 부정으로 수급하려는 사람도 있다. 다종다양한 인간들이 모인 이 성냥갑 같은 네모반듯한 건물을, 조정래는 아파트를 처음 본 상경한 이의 시선으로 표현한 바 있다. 「……1, 2층도 아닌 5층이나 6층의 높은 건물에 층층이 사람이 산다는 것이었다 (...) 머리 위에서 불을 때고 그 머리 위에서 또 불을 때고, 오줌똥을 싸고, 그 아래에서 밥을 먹고, 그러면서 자식을 키우고 또 자식을 낳고, 사람이 사람 위에 포개지고 그 위에 또 얹혀서 살림을 하고…….」 그러나 이러한 경이로운 모습이 낳은 것은 건물의 구획 정리와 그에 따른 단절이다. 이제 맨션(아파트)은 성냥갑이 아닌 '토끼장'이다. 서술 시점의 재빠르고 복잡한 변화로, 그랜드맨션의 토끼장에서 등장인물들은 조금씩 이웃을 알아가고 그들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려 하기도 한다. 『그랜드맨션』은 다분히 엔터테인먼트로서의 성격을 띠지만, 몰랐던(관심도 없던) 옆집의 정체(라기보다는 사정이라고 하자)를 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저 우스꽝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그건 바로 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