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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해럴드 셰터 (처음북스, 2014)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 8점
해럴드 셰터 지음, 이화란 옮김/처음북스(구 빅슨북스)


간과 장소를 어떻게 볼 것인가. 사람 하나를 두고 어떻게 단정 지을 것인가. 이 두 가지는 인간이 가지는 인식을 고착화시키기에 적절한 관점이다. 과거에는 비난했을 어떤 행동이 오늘날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어 사회적 통념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그와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그리고 어느 쪽이건 그 사람들이 모인 여론과 더불어 언론의 역할 또한 작용하게 된다. 이 언론이란 것 역시 순기능과 역기능, 그러니까 그 촉매가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느냐에 따라 특정 사안의 양상은 완전히 뒤바뀔 수도 있다.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은 바로 그 언론의 '히스테리'를 주제로 삼고 있다. 희대의 살인 사건.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여론 역시)이 달려들 '최적의 조건'이 갖춰진 살인 사건을 다룬다. 여기에 앞서 언급한 시간과 장소라는 것이 간섭한다. 1930년대의 미국. 대공황과 침체라는 안개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든) 살인 사건'이란 명제는 필시 자극적이긴 하지만 흥미로운 사건이었음에 분명하다. 일종의 3S처럼 말이다. 기묘한 것은 해당 살인 사건이 어느 곳에서 발생했고 또 어떤 사람이 엮여있는가 하는 것에 따라 '화제성'의 여부가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부활절. 시간적으로도 얼마나 기가 막힌 타이밍인가. 또 시신의 주인. 바로 아리따운 모델이며 나체로 발견되었다. 그런가하면 그녀는 누드모델로도 활동한 적이 있다. 이러한 '조건들'이 맞아떨어졌다는 점이 당시 사람들과 언론이 들개처럼 달려들 여지를 준 것은 아닐까. '활력소'라고 하기엔 미안한 말이지만 어쩌면 그 시대의 인간들은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너도나도 그 사건에 대해 떠들어대고 언론은 사실이건 아니건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내뱉음으로써 구독자들을 자극적인 시선으로 내몰고 부추긴다. 그리고(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그들은 사람 하나를 피해자로 만들 수도 있고 피의자로 만들 수도 있으며 우리는 피의자나 피해자가 아닌 그저 확인되지 않은 자극적인 그 무엇인가를 갈구하도록 길들여진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의 상상력이라더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분명 논픽션이지만 하나의 소설처럼 읽힌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은 여기저기에 군침을 흘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보탠다. 끊임없는 소모적 반복이다. 왜 그런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삶 자체가 자극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흥미 없는 삶. 똑같은 모습을 가진 어제와 오늘. 나는 미치광이 혹은 사이코패스와 같은 단어들 역시 태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 우리는 뭔가 하나의 상황이나 성격을 규정짓고 싶어 하며 그 현상을 어떤 단어로 부를지 고민한다. 혹은 특정 사건 앞에 피의자나 피해자의 이름을 붙여 그 사건을 명명하기도 한다. 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말할 것도 없을 테고. 그러므로 사회규범으로 통용되던 것에서 약간의 일탈이 일어나게 되면 반드시 언론과 구독자(여론)의 합작품이 탄생한다. 선정적 헤드라인. 자극적인 형용사와 부사의 난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