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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오! 이런, 이란』 최승아 (휴머니스트, 2014)


오! 이런, 이란 - 8점
최승아 지음/휴머니스트


저우 아시게임이었던가, 3 대 1로 지고 있던 남자 축구에서 지동원의 두 차례 헤딩골을 통해 4 대 3 역전극을 만들어냈던 것이. 당시 해설을 맡았던 이용수가 이란의 침대 축구를 향해 꼴 보기 싫다는 코멘트를 그대로 내보냈던 걸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강남의 테헤란로. 30여 년 전 한국의 서울과 이란의 테헤란 사이에 맺어진 자매결연으로 탄생된 이름, 그 거리에 면한 한 회사에 입사면접을 보러 갔다가 고배를 마시고 돌아왔던 또 다른 기억. 내가 이란이란 나라에 대해 알거나 기억하고 있는 것은 크게 이 두 가지로 압축된다ㅡ 아, 튤립을 닮은 네 개의 초승달과 칼(이란의 국기에 들어간 문양)도 있다……. 한국에선 담뱃세 인상에 관한 예산부수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었는데 이란은 밀수를 방지하는 차원에서 담뱃값이 점점 싸졌다는 이야기에 눈이 번쩍 떠지면서도,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억지로 해가며 책장을 하나씩 넘긴다. 첫 장부터 테헤란의 대기오염과 교통체증을 보여주는 사진이 하나 등장했다. 빼곡한 건물들, 어지러운 시내 풍경이 이곳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란의 인터넷 속도에 관한 꼭지를 읽을 땐 언젠가 우리도 그런 환경에 처할까 봐 약간 저어되는 마음이 들었는데, 반(反)이슬람적이거나 서구의 언론, 영화, 음악 등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의 조처 탓에 인터넷의 속도가 제한된다는 거였다. 그러나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고 한들 인간의 열망은 그보다 강한가 보다. 그린웨이브로 불리며 온 거리를 초록빛 물결로 만들었던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반정부시위는, 정부의 언론통제에도 불구하고 SNS를 통해 세계로 전파되었다. 반대로 한국의 인터넷 속도는 빠르지만 각종 검열에 취약한 것은 이란과 대동소이하질 않나. 이래저래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씁쓸한 기분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읽어가는 페이지가 하나씩 늘어갈수록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 페르시아어로 표현한 문신이라는데 어딘지 모르게 그림 같기도 해서 예쁘다.




먼저, 우리가 일컫는 한류로 인해 이란의 젊은이 하나가 죽을 뻔했다는 것. 그는 드라마 <주몽>에 나온 여배우를 본 뒤 한국에 가 청혼하겠다는 결심을 했는데, 아버지의 꾸지람을 듣고는 천장에 목을 맸다는 것이다. 어깨와 무릎 그리고 종아리가 드러나는 정도의 노출도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는 탓에 상대적으로 배우들의 노출이 심하지 않은 한국의 사극이 인기를 끌었던 까닭이다. 그리고 이 노출이란 단어에 이슬람을 집어넣으면 곧바로 히잡으로 연결된다. 이란에서 히잡을 쓰는 것은 의무사항이란다(외국인도 예외 없이). 히잡을 쓰지 않거나 불량한 모양으로 쓴 채 거리를 활보하다 적발되면 종교경찰에게 훈계를 듣게 되고(우리로 치자면 '훈방'일까?) 혹은 교육시설로 옮겨져 소위 재활교육을 받는다는데, 저자 역시 쓰고 있던 모자가 흘러내려 여권 제시를 요구받은 적이 있을 정도라니, 히잡과 불심검문은 어딘지 모르게 과거 한국의 장발 단속을 생각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에서만큼은 예외다. 책에 실린 사진을 보니 신부로 보이는 여성이 히잡을 두르지 않은 채 머리카락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으며 심지어 양쪽 어깨와 가슴 언저리가 팬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실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서구의 영향을 받은 탓일까. 저자가 외출 준비의 마지막은 늘 히잡이었다고 토로할 만큼 엄격함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그녀가 찍은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 나름대로의 자유분방함이랄까ㅡ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분위기는 있는 것 같다. 사진 속 그녀들은 히잡을 뒤로 젖혀 자신의 머리칼을 드러내고 있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10~30대라고 하니 히잡을 쓰는 방식은 어느새 그저 일상용품을 대하는 수준이 되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익은 열매가 저절로 벌어지며 쪼개지는 소리에 행운이 깃들어 있다는 전설로 연인들의 밀월 장소가 된 피스타치오 나무 밑, 예배 때마다 발을 씻기 때문에 좀처럼 무좀에 걸리지 않는다(정말일까?)는 무슬림들의 모스크, 멸망한 페르시아 왕자가 중국을 거쳐 한국의 신라로 망명해 그곳 공주 중 한 명과 결혼한 뒤 훗날 제국을 다시 찾는다는 내용의 서사시 「쿠쉬나메」…….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드 이야기처럼, 『오! 이런, 이란』은 타 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는 '세계를 읽다' 시리즈와 같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과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흥미로움을 주며, 동시에 저자가 이태 가까이 그곳에서 체득한 결과물이기에 현재의 이란을 볼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타이틀도 기막힌데 표지마저도 놀랍다). 물론 내가 떠든 것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저자에 따르면 이란의 카펫 시장에서는 갓 짠 카펫을 거리에 깔아놓은 채 사람들로 하여금 밟고 지나가게 한단다. 밟으면 밟을수록 색깔이 더 선명해지기 때문이라는데, 이 책 역시 부들부들한 카펫 위에 누워 수다를 떨듯 읽다보면 테헤란 기숙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어느 틈엔가 모스크를 벗어나 이란이라는 나라 전체를 둘러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