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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마크 롤랜즈 (책세상, 2014)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 - 8점
마크 롤랜즈 지음, 신상규.석기용 옮김/책세상


야 「I will not be your father」라고 적힌 재미있는 콘돔이 시판되고 있는 모양이지만, 다스 베이더가 제국을 건설하러 떠나 기러기 가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어쩐지 기묘하게 아귀가 들어맞는 느낌이다. 물론 이 『우주의 끝에서 철학하기』가 '철학하기'로 제목을 맺는 다른 책들과 얼마간 궤를 같이한다는 것만은 인정해야겠다ㅡ 『범퍼스티커로 철학하기』, 『라디오헤드로 철학하기』,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헝거 게임으로 철학하기』……. 《매트릭스》의 토머스 앤더슨(네오)이 배꼽에서 기계 벌레를 꺼낸 후 ‘내 귀에 도청장치’ 상태에서 해방되고, 무식하게 뵈는 도구를 이용해 콧속에서 추적 장치를 끄집어내는 《토탈 리콜》의 더글러스 퀘이드,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잇는 《코드명 J》 등으로 보건대 영화, 특히 SF영화, 가 대중들에게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과학에 이르기까지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수용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일 거다. 보는 동시에 들으며 인식하게 되는 까닭이다. 그러나 위에서 다소 비아냥거리듯 언급했던 '철학하기' 부류의 책들이 한 번 더 반복해서 나서주지 않으면 제대로 느끼고 인지하기도 전에 단순하게 보고 듣는 것에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눈으로 보면서 즉시 휘발되기 때문이다). 지젝이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말이다ㅡ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 행동을 멈출 생각은 없겠지만.





이를테면 《할로우 맨》에서의 세바스천이 벌였던 행동들에 도덕과 정의라는 관념을 간섭시키자면 이야기는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그가 투명인간이라는 특징을 이용해서 누군가를 강간하거나 해하거나 별 의미도 없는 ㅡ 보통 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못했을) 행동 ㅡ 일들을 벌일 때, 우리가 일종의 대리만족과 통쾌함이라는 기분과 '어떻게든 저놈을 잡아야 해' 하며 그의 동료 내지는 다른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이해하기 힘들다.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두 가지 명제를 소원하고 있는 동시에 이분법의 논리에도 휘말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이기적이지 않다.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을 때 자신의 흥미를 위해 뭔가를 하는 것과 순전히 선의로 기부를 했지만 훗날 칭찬받는 자신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것은 어찌 보면 비슷한 감정일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인간이란 족속에게 벌어지는 일들은 죄다 이런 식이다. 만약 이러한 것들이 '이기'라는 단어를 갖다 붙일 정도를 넘어섰다면 그 사람은 이미(애초) 이기적이지 않다. 그것은 인간 자체가 태초부터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의미일 것이며, 기본적으로 동물이란 두 개의 눈알을 가지고 있을 것이 빤한데 구태여 그 점을 가리켜 '넌 정상적인 눈을 가지고 있군' 하며 설명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떠들어댈 필요는 없는 것이므로. 만약 그렇다면(누구라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면) 너덜너덜한 가면을 쓴 세바스천이 도덕적으로 꾸지람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은 다소 이상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되는 생물체이던가. 남을 따돌리는 것 말고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ㅡ 시간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데도 끊임없이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광클릭'하는 것 ㅡ 행동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