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문학의 매혹』 H. P. 러브크래프트 (북스피어, 2012)

· 책_롱 2015. 6. 6. 21:49

공포 문학의 매혹 - 8점
H. P. 러브크래프트 지음, 홍인수 옮김/북스피어


름이면 항상 떠오르고, 또 찾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공포라 정의될 수 있는 영화와 소설. (영화 《더티 댄싱 하바나 나이트》도 여름만 되면 자연스레 생각나긴 하나 좋은 음악을 제외하면 다소 진부한 설정일 따름) 그중에서도 특히 이야기 자체가 주는 재미에 매료되게끔 하는 《이벤트 호라이즌》을 자연스레 찾게 된다(반대로 겨울이면 《나 홀로 집에》를 틀어놓고 소파와 한 몸이 된다). 나는 나를 공포로 몰아넣을 수 있는 매체라면 기꺼이 주머니를 비울 의향이 있는데, 《이벤트 호라이즌》은 충분히 그럴 만한 영화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흔히 이 영화는 코스믹 호러로 분류되기도 해 다소 마니아를 위한 작품이 아닌가 하고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심지어 코스믹 호러라는 말은 똑 부러지게 정의되지도 않는다. 대개 '우주적인 공포'랄까, 미지의 강력한 존재 앞에서 희생양이 된다는 식의 공포로 회자될 뿐. 이 『공포 문학의 매혹』을 쓴 러브크래프트 자신의 작품들이 바로 그러하다(이 책에서 러브크래프트 자신이 '코스믹 호러'라는 말을 쓰고는 있으나 그의 작품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단어다). 하지만 사실 말이 코스믹 호러이지 그것은 공포의 근원과 패턴을 잘게 잘라 나눈 결과 중의 하나밖에는 되질 않는다. 러브크래프트가 책을 시작하며 적은 첫 문장을 보자.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바로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나는 이 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다. 미지의 것(실체는 있으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야말로 우리에게 공포심을 주게 되는 거라고. 이 세계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앞에 나타난다면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또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시선이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면 그 앞에서 공포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나. 물론 『공포 문학의 매혹』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렵고 지루할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장담한다. 그도 그럴 것이 러브크래프트의 이 책은, 시종일관 작가와 작품을 나열하면서 그에 대한 설명만을 이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호러 문학 전반을 순식간에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엄지손가락을 제꺽 들어줄 수 있겠다. 머리와 꼬리 없이 알맹이만 쏙 빼서 독자의 입에 넣어준다는 느낌이다. 때문에 이와는 약간 다르긴 하나 킹의 『죽음의 무도』 또한 곁에 두고 읽어봄 직하다. 거기에서 킹 역시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하는데(그러지 않을 수 없었을 거다), '외부의 악'이라는 개념을 잘 파악해 훌륭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고 칭찬하고 있다. 실제로 국내에 번역된 러브크래프트 전집엔 다종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려 있으나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이번에도 '외부의 악', '보이지 않는 존재', '미지의 것' 등이고. 뭐, 이야기가 엇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름 = 공포]라는 등식은 언제고 성립한다고 본다(물론 겨울을 배경으로 한 공포 영화나 문학도 있겠으나 공포 문화는 여름이 아니면 별무소용이다. 심지어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제목 자체에 '여름'을 넣어가면서까지 만들어지지 않았던가!). 따지고 보면 《엑소시스트》도 코스믹 호러라 볼 수는 없지만(그렇다고 스릴러도 아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지의 것으로 하여금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토 준지의 만화나 스티븐 킹의 소설들에서도 살인마나 괴물 등이 아닌 '전혀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등장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 역시 마찬가지!). 보라, 잔혹한 살해 현장이나 핏물이 난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 또는 소설을 두고 우리는 '공포'라는 말을 잘 붙이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대개 '스릴러'로 불리기 때문이다(더군다나 스릴러물은 훨씬 많은 범주의 다양성을 확보한다). 그러므로 역시 공포란, 미지에 대한 반응이 당위적인 이유가 될 것이다(실생활에서 직접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사례는 당연히 '보험 가입'이 아닐까? 내가 어떤 병에 걸릴지, 내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공포를 느낀 뒤 자연스레 다가오는 안도와 평온 속에서 이전의 공포와는 상반된 쾌감을 얻는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