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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레

『냉혹한 이야기』 루이즈 페니 (피니스아프리카에, 2014) 냉혹한 이야기 - 루이즈 페니 지음, 김보은 옮김/피니스아프리카에 이리저리 옮겨 다닌 시체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된다. 야생동물 보호구역, 스리 파인스의 어느 곳에서. 심하게 굶주린 이들이 잔뜩 무리 지어 살고 있는 야생동물 보호구역. 그들은 서로를 주저하면서도 이따금씩 생채기를 내는가하면, 바깥으로부터 숨어는 있지만 자신들 역시 과거에 외부인이었다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그리고 그들 어제의 과거가 곪기 시작해 기어이 오늘 살갗 위에서 터지고야 만다(악마가 언제나 구석진 곳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도서추리의 냄새가 나는 『냉혹한 이야기』는 짧았던 프라하의 봄의 상처가 더쳐 모든 것이 거의 변하지 않는 마을 스리 파인스에서 곪아터진다ㅡ 마을 주민 클라라의 말처럼 스리 파인스에는 시체를 만들어내(.. 더보기
『푸른 작별』 존 D. 맥도널드 (북스피어, 2012) 푸른 작별 - 존 D. 맥도널드 지음, 송기철 옮김/북스피어 Salvage Specialist. 트래비스 맥기의 직업이란다. 그러면서 보수는 의뢰인이 최종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금액에서 경비를 제하고 남은 것에서 절반. 도둑에다가 사기꾼이다. 더군다나 여자까지 후리고 다니는 꼴이라니(자의건 타의건). 섹스와 폭력이 점철된(?) '전설'의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는 이 『푸른 작별(The Deep Blue Good-by)』로부터 시작한다.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물론이거니와 전체적인 흐름 역시 말랑말랑한 필립 말로와 까끌까끌한 샘 스페이드와도 약간 다르다. 으레 그렇듯 주인공을 도와주는 협잡꾼 장물아비도 하나 등장해 주시고 말이지 ㅡ 이 점에서는 매그레와도 다르군(그럴 수밖에). 그리고 당연히, 우리가 구분 짓는.. 더보기
『수상한 라트비아인』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흔히, 장정(裝幀)만 보고도 질려버리는 케이스가 있다. 이를테면 토마스 만이랄지, 움베르토 에코의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중세 이야기들 말이다. 분량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딱딱한, 살인도구도 될 수 있으며 목침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법한, 뭔가를 내려치기에 꼭 맞다싶은 표지. 물론 내용조차도 심연에 빠지기 딱 좋은 경우가 많다. 이 조르주 심농의 『수상한 라트비아인』, 가볍다, 일단 겉모양이. 헬레네 헤게만이 쓴(정말 직접 쓴 것일까?) 『아홀로틀 로드킬』과는 겉이 닮아있고,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와는 속이 닮았다(그저 그렇게 느껴졌다, '증발'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아! 비교하기엔 레이먼드 챈들러가 낫겠다, 물론 그것보다 조금 덜 묘사에 신경 쓴 것만 빼면 ㅡ 물론 확실히 다르다. 굳이 묘.. 더보기
『생폴리앵에 지다』 조르주 심농 (열린책들, 2011) 생폴리앵에 지다 - 조르주 심농 지음, 최애리 옮김/열린책들 200페이지 남짓한_그래서 순식간인_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끝나고 마는 소설. 결코 쓸 일이 없을 것 같던 칼날은 비틀비틀_절대 아물 수 없는 상처는 가닐가닐. 그래서 누군가는 죽고_죽인 자는 발 뻗고 잠을 못 잔다. 소크라테스 왈_ 우리가 어떤 일이 악행인 줄 알면서 자발적으로 그 일을 저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_만일 악행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무지에서 기인한 것이다. 더보기
『D의 복합』 마쓰모토 세이초 (모비딕, 2012) 괜히 장르문학이라고 편을 갈라 사람 위에 책 있고 사람 아래 책 있는 것처럼 말하면, 나는 싫다. 짐짓 도저하게 ‘장르’문학이라는 딱지는 붙여놓았지만 ‘순’문학과 비교하며 순간의 오락거리로 치부해버리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농(Georges Simenon)은 ‘선전 속 인간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인간’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는데 세이초 자신도 ‘환상이 아닌 리얼리즘 안에서’ 미스터리를 쓰고 싶다고 했다(실제로 둘은 동시대를 살았다). 복잡다단한 트릭이나 특수한 환경이 아니라 어디서나 일어날 것 같은, 그것. 세이초 작품은 그래서 ‘여흥’이 아니다. 그런데 그의 작품은 언제나 뻑적지근하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런가. 이런저런 말을 붙여도 역시 초반은 힘이 조금 든다. 얼마 읽지도 않았는데, 뭐야 이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