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헌 (돌베개, 2015)

· 책_롱 2015. 8. 10. 15:57

전복과 반전의 순간 - 8점
강헌 지음/돌베개


든 예술은 공공의 미(美)인 동시에 무죄인 건가. 그렇다면 음악 또한 무죄일 터다. 하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의 재미가 더해지는 건 부제(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에서 알 수 있듯 음악(사)을 관통하는 특수한 순간들과 함께 버무려진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을 거다. 각각의 장에서 발견하게 되는 이채로운 순간들은 전쟁과 노예에서 시작한다. 쿠바를 놓고 미국과 스페인이 전쟁을 벌인 후 버려진 군수물자들 중엔 군악대에서 쓰던 악기가 있었다. 특히 소리가 멀리 전달된다는 특성 때문에 군대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건 관악기. 그리고 그 전쟁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가 바로 뉴올리언스였다. 뉴올리언스가 어디인가. 바로 재즈의 발상지라 여겨지는 바로 그곳이다. 나 원, 더군다나 거기에선 루이 암스트롱이 태어났다. 그런데 책에 의하면 재즈에 사용되는 악기를 만든 것도, 재즈 음반을 가장 먼저 녹음한 것도 백인이다. 희한한 일이다. 재즈라고 하면 으레 흑인의 탄력 있는 제스처가 떠오르는데 말이다. 가혹한 매질을 당하며 서로 대화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일해야만 했던 목화밭의 노예들, 백인이 정해놓은 규율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들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것뿐. 바로 필드홀러(field-holler)다. 들판에서의 절규? 황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p.39)ㅡ 훗날 멕시코 올림픽에서의 블랙 파워 살루트를 떠올려보면 이 모든 것이 잊을 수 없는 역사라는 사실에 기분이 새로워진다. 그리고 이어진 블루스와 가스펠의 탄생. 세계는 내처 '모던'해지고, 50년대 미국 중산층과 히피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날 무렵 엘비스 프레슬리와 로큰롤, 비틀즈, 롤링 스톤스가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 한국에선 신중현과 김민기, 한대수로 대변되는 포크의 물결이 시작되고, 저 유명한 「아침 이슬」이 금지곡으로 지정된다(최초 양희은의 목소리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청년들로부터 많이 불리고 금지곡까지 된 것이지 김민기 본인이 부른 노래를 들어보면 맥이 풀릴 지경이다. 하지만 나는 김민기 버전을 더 좋아한다. 본래 「아침 이슬」은 만취해 '필름이 끊어진 뒤' 야산 공동묘지에서 자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선 '쪽팔려서' 만든 노래다). 책은 세 번째 장에서 훌쩍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클래식을 훑는데, 다시 마지막 장에선 20세기 한국으로 돌아온다(트로트와 엔카의 탄생과 원조 논란도 이야기된다). 심지어 명성황후와 동학농민혁명까지 언급되는데 윤심덕이 죽은 뒤에야 발표된 「사의 찬미」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는 것만 같다.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전복'과 '반전'을 준비했다. 미국을 뒤흔들었던 재즈와 로큰롤, 한국의 통기타 음악과 그룹사운드, 프랑스혁명 전후의 모차르트와 베토벤,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관통하는 한국 근대음악까지. 그런데 좌표가 어디에 맞추어지든 내용과 관련 없는 의문이 하나 드는 건, 강헌이 왜 지금까지 제대로 된 책 한 권 발표하지 않았었느냐는 거다. 책이 재미있고 아니고는 차치하고 그쪽이 더 의아하기 짝이 없다(인터넷을 뒤져보니 이전에 쓴 뭔가가 있긴 한데, 이 『전복과 반전의 순간』 쪽이 좀 더 자유로운 이야기를 담은 것 같다).



posted by 아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