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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롱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니킬 서발 (이마, 2015)

큐브, 칸막이 사무실의 은밀한 역사 - 10점
니킬 서발 지음, 김승진 옮김/이마


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다룬 스터즈 터클의 인터뷰집 『일』ㅡ얄궂은 부제는 '누구나 하고 싶어 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이다ㅡ에서 어느 회계사는 말한다. 「'내 일은 과연 중요한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 저는 오염에 맞서 싸우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는 일이 사회에 중요한가는…… 아니요,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대기업에 바탕을 두고 있는 지금 같은 경제에서는 필요하겠죠 (...) 말씀드릴 게 별로 없습니다.」 아아, 큐비클 밀림을 헤치며 사무적인 일에 몰두하는 사무원들이여. 라이트 밀스(그는 화이트칼라 계급을 '쾌활한 로봇'이라 불렀고, 업튼 싱클레어가 화이트칼라란 말을 만들어냈을 땐 하찮은 서류 작업이나 필사를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가난하고 더러운 공장 노동자와 달리 지배 계층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비웃기 위한 것이었다; p.109)와 서발이 모두 인정하는 화이트칼라 일터의 사회적 특성이란 대체 뭔가. 그들에 의하면 사무실은 과장된 악수와 공허한 친교의 공간이자 정신을 무디게 하는 지루한 작업과 개인의 고립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런가하면 싱클레어 루이스에게 오늘날의 영웅은 늑대가 울부짖는 숲이 아닌 타일 깔린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돌아다니며, 사무실의 책상 사이 통로는 전쟁터의 참호나 노르망디 전선에서만큼이나 끊임없이 은밀한 로맨스의 화살들이 날아다니는 공간이다.(p.104) 더욱이 서발이 묘사했듯 이렇게나 지위에 대해 의식하는 직업도, 이렇게나 지위에 대한 걱정으로 동기 부여가 되는 직업도, 그러면서 또 이렇게나 지위 상승에 대해 확신하는 직업도 없었다는 것ㅡ노동자들의 배제된 숙련과 그들의 작업을 관리자의 밑에 두어 노동 과정을 통제한다는 테일러주의의 핵심과 맞물린 모양새를 보라. 사무원들은 언제나 변화 파악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존재인가? 철골에 의해 건물이 만들어지고, 엘리베이터 덕에 고층빌딩을 편히 오르내릴 수 있게 되고, 타자기가 사무실에 들어왔으며, 마침내 전화기가 만들어짐으로써 칸막이 사무실과 사무원들이 늘어난 것인가? 비즈니스가 분업화됨에 따라 육체노동과 비육체노동이 분리되고 그들 사이의 소득 격차가 생겨난 것인가? 바틀비 시대의 사무실이 잘게 썰어져 테일러주의가 촉진된 것인가?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인가?




사무직 노동은 대다수 미국인이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부합하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사무원은 땅에서 일하지도 않았고, 기찻길을 놓지도 않았으며, 공장에서 무기를 만들지도 않았고, 연못 근처에 은거해 내면을 수양하며 콩을 키우면서 살지도 않았다. 농사나 공장 일과 달리 사무직 일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재생산을 할 뿐인 듯했다.


ㅡ p.26




테일러에서 엔지니어 남편을 둔 심리학자 릴리언 길브레스를 거쳐 인사 관리,ㅡ과학적 경영의 가장 오래가는 성취가 되었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ㅡ즉 '인적 자원 관리'라는 이름으로 사무실 업무(정확하게는 관리자의 업무)는 진행된다. 군대식으로 사열한 책상, (테일러와 거의 함께 나오는 이름)레핑웰이 제안한 공장 조립라인 방식의 사무실 배치. 아름답고 우아란 세렌디피티적 만남이 가능하기는 한가? 심지어 기업의 통제가 직장의 범위를 넘어 가정에까지, 그러니까 직원이 에너지를 온전히 회사 일에 쏟을 수 있도록 아내들이 호의적이고 건설적인 태도를 갖도록 계획해야 한다는 한 임원의 말이 이토록 악랄하게만 들리는 마당에 말이다. (그리고 사무원의 '아내들'이기도 하지만 '화이트칼라 걸' 혹은 '타이핑 걸'이라 불리며 사무실을 꿰차기 시작한 여성들ㅡ상사의 장식품으로 '마감재' 역할을 했다고 할 정도로 낮은 직위는 여성들 몫이었고ㅡ타자수, 속기사, 서류 정리원, 교환수, 비서ㅡ특히 속기사나 타자수의 일이 지루하다는 점에서 여성의 일로 여겨졌다면 비서의 일은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여성의 일로 여겨졌다; p.107) 꽉 막힌 공간에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바틀비와 임금 인상을 위해 쉼 없이 거대한 건물을 배회했던 대기업 사원(조르주 페렉 『임금 인상을 요청하기 위해 과장에게 접근하는 기술과 방법』). (여기에 액션 오피스(물론 그 전에 슈넬레 형제의 뷔로란트샤프트도 있었더랬다!)로 유명한 프롭스트의 다소 길고 유용한 문장을 옮겨본다. 「분명히 동굴 인간은 좋은 동굴을 발견해서 몹시 기뻤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동굴 입구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등 뒤를 보호하면서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아는 것은 매우 좋은 생존 법칙이다. 사무실 생활에서도 이는 매우 좋은 생존 법칙이다.」) 그리고 빌어먹을 큐비클. 한 사람씩 들어갈 수 있도록 칸막이가 된 작은 사무 공간. 사무직 노동자가 헝겊 씌운 허술한 칸막이 안에서 반쯤은 밖에서 보이는 채로 앉아서 잘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공간. '창문 없는', '삭막한', '사육장', '불펜', '아수라장' 같은 단어와 함께 쓰이는 큐비클ㅡ큐비클 농장.(p.323) 큐비클은 사람들을 빽빽이ㅡ'빽빽이'라는 부사마저도 얼마나 빽빽하게 느껴지는지!ㅡ모여 있게 해서 짜증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을 분열시켜서 함께 일하고 있다는 느낌도 주지 못했다.(p.331) 화이트칼라나 샐러리맨, 직장인 문화와 같은 다소 모호하고 기품 있어 뵈는 단어의 특징은 우리로 하여금 큐비클에 한번쯤은 앉아보고 싶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밀스의 말처럼 화이트칼라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인 게 맞나? 그들은 거대 기업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자신이 독립적이고 기업가 정신이 넘친다고 믿는 자발적인 종속자들인가? 노동자 정신, 공장에서와 같은 반복 작업, 덫에 걸린 조직인, 우울하게만 보이는 사무실의 그림들ㅡ애초 사무실은 지루함의 상징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냄새가 나는 공간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럼 루소의 경구를 본떠 다시 한 번 이렇게 말해보자.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지만 어디에서나 큐비클에 갇혀 있구나.」(p.12, 머리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