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전3권)』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2009)

· 책_롱 2012. 3. 30. 11:02


「공기 번데기에서 '번데기'와 '누에고치'를 혼동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오웰의 『1984』의(와) 빅 브라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밤 10시에 자고 아침 6시에 일어아는 덴고는 군인(일본 자위대의 경우는 정확히 어떤지 모르지만)으로 묘사되고 만약 시점이 일제 강점기라면 후카에리는 위안부인 것인지(어쩌면 아오마메도) ㅡ 나중에 그녀는 덴고에게 몸을 '바친다.' 군인인 덴고는 아오마메를 사랑하지만 아오마메는 살인을 하는 사람이며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태를 하게 되고, 그런 그녀에게 70대 노부인은 '우리는 올바른 일을 했으니까요' 하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인지. 그리고 옆에 서 있는 다마루라는 남자는 그녀(들)에게 '하늘의 뜻에 따라'맞장구를 치는 것인지 ㅡ 사실 이 논리로는 책의 많은 부분을 설명하기 힘들긴 하지만. 아니면 『1Q84』는 그저 연애소설인지 ㅡ 나는 여기에 무게를 두는 쪽이다. 체호프였는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작가는 이야기만 하고 그 이후의 문제는 독자의 몫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대체 뭐가 뭔지 당최 알 길이 없다. 『노르웨이의 숲이나 『양을 쫓는 모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아니면 『1973년의 핀볼은 좋았다. 그런데 『어둠의 저편 혹은 『해변의 카프카부터였는지, 뭔가 조금씩 꼬이기 시작했다. '뭔가가 꼬였다'라는 건 내가 느끼기엔 분명하다. 그런데도 『1Q84』 4권이 나온다면 어쨌든 읽어보긴 할 생각이다. 대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돌려놓을 것인가, 하는 것과 어디까지 가나 한번 보자, 하는 생각에서이다. 이따금 이 책에 대해 생각을 떠올릴 때면, 철두철미한 성격을 지닌 NHK 수금원의 말이 들린다. 「설명을 안 해주면 그걸 모른다는 건, 말하자면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나는 도대체 이 소설의 정체가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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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길(전2권)』 마쓰모토 세이초 (북스피어, 2012)

· 책_롱 2012. 3. 19. 12:31


군가는 그렇고 그런 치정을 다룬 B급소설이라고 할는지도.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 재미있으니까. 나는 트릭을 풀고 범인을 밝혀내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세련됐다, 뭐 그런 생각이다. ‘이야기’가 있잖나. 단 한번이라도 이름이 언급된 인물은 책동의 기미를 보이고, 나라도 그럴 수 있으려나, 하는 ‘텍스트 vs(and) 현실’의 일말의 끈이 있으니까 말이다. 집에 병자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다미코의 생각은 나도 (경험해봐서)안다. 그래서 얼마든지 실현 가능성이 있다는 충분조건이 구비되어 있다. 단, 저 뒤에서 ‘노인의 고독’(하권 p.300)을 깨달았다면 남편의 고독 또한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또한 생긴다 ㅡ 어느 쪽이건 그녀가 씁쓸해지기만 하지만 역시 세이초의 여성 심리묘사는 탁월하다 못해 정말이지 천재적이다. 이미 범인이 밝혀진 상태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물론 형사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문제는 숨 돌릴 수 없는 ‘마트료시카 내러티브’다. 다미코가 기토의 집에서 본 분노의 불상(佛像) 애염명왕(愛染明王)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미 그거면 됐다. 아니, 호센가쿠 여관의 ‘미유키에서의 도박’ 때부터, 그러니까 아예 처음부터 모든 걸 말했다싶을 정도다. 꿈을 모방한 가레산스이(枯山水)처럼. 산 제물로 바쳐진 사람, 그리고 그 제물을 삼켰지만 후에 내뱉어진 건 푹 패어진 구멍의 사물일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결구도에 서서 부침을 계속하는 건 역시 다미코인데, 여관의 고참 오쿠니와 불똥이 튀는가 싶더니만 뒤에서는 저택의 고참 요네코와 신경전을 벌인다(정작 주의해야 할 건 그게 아니었으니!). 어쩌면 여관 여주인의 ‘야간비행’(향수 이름)과 저택에 들어간 후 다미코의 몸에서 난 ‘야간비행’은 기토의 여자들을 보여준다는 측면도 있지만 같은 꿈을 꿨더라도 해몽은 다를 수 있다는 걸 암시하는 걸까 ㅡ 그녀는 결국 날지 못했으니. 여관을 벗어난 무대는 쓸쓸한 뒷골목 같은 뉴 로얄 호텔 8층이란 무풍지대. 그러나 역시 이곳은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올 수 없는 올무였다. 길을 헤매고,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거대한 산. 형사 히사쓰네가 줄곧 느껴왔던 게 이것과 같은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히사쓰네에게 닥치는 첩첩의 벽을 바라보면 나조차도 참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짐승의 길』이 독자에게 제공하는 정보는 크게 다미코와 히사쓰네라는 두 개의 생각의 줄기에서 뻗는다 ㅡ 그러나 다른 등장인물들 간의 밸런스가 무척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어 텍스트의 거의 무차별적인 린치를 맞을 수도. 동체에 접근하(려)면 할수록 기토가 ‘후와, 후와’ 하고 쪼그라든 잇몸으로 웃는 모습이 따라오는 것만 같다. ‘경찰이라는 조직은 작은 죄를 눈감아 주고, 언젠가 큰 범죄의 혐의를 받게 되었을 때 그것을 체포 구실로 쓰려고 아껴 두는 곳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는 히사쓰네의 고뇌가 다미코에게도 해당된다 하면 억지이려나. 그러는 사이 초반에 사라진 다미코의 남편은 어느 샌가 잊히고 말았다 ㅡ 아차, 이름도 잊어버렸네, 미안(재킷에 ‘어깨뽕’ 넣던 시절 일본 드라마 주인공과 한자만 다른 이름이었지! ‘죽은 놈만 불쌍하다’ 인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브레이크 없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열차를 타고 달린 한 여인의 비극적인 말로’라는 촌스런 부제라도 붙여주고 싶을 만큼 『짐승의 길』은 그 ‘길’을 철저히, 처절하게 걷는다. 일견 김기덕식 진지함도 엿보이고. 《악어》(1996)에서의 용패와 현정을 고타키와 다미코로 나란히 놓으면 어떨는지. 물론 순서는 다르다. ‘병주고 약주고’와 ‘약주고 병주고’. 게다가 용패는 막판 한강에서 치졸하게 살아보려고 하는 통에 멋진 판타지는 깨져버리지 않는가. 근데 왠지 《야생동물 보호구역》, 《파란 대문》, 《섬》, 《나쁜 남자》 등등, 김기덕과 비슷한 구석을 발견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패트런이건 모르모트이건 매한가지니까……. 아, 한 가지 잊은 것. 후반부에서 건재상과의 연결 부분은 좀 갑작스럽다고 느꼈지만 뒤에서 그것이 다시 한 번 등장하고, 또 그게 ‘어떤 역할’을 한다는 것에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기토의 이불 밑에 있던 권총은 끝내 발사되지 않았다 ㅡ 아오마메(무라카미 하루키, 『1Q84』)의 총 역시 그랬고 ㅡ 체호프가 실망하겠는 걸. 발사되지 않은 권총이 안타깝더라도, ‘불(火)로 시작해서 불로 끝’났으니 이 정도면 수미쌍관의 미덕은 지킨 셈.


) 하아. 해설까지 끌어오며 얘기를 더 하고 싶지만 여백이 너무 좁아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그래도 거기서 하루키(村上春樹)를 언급한 부분은 재미있었다(그는 『해변의 카프카』 때부터 정나미가 좀 떨어지긴 했지만). ……그런데 쓰고 보니 두서가 없어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 했다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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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E. M. 포스터 (열린책들, 2009)

· 책_롱 2010. 8. 19. 11:48



『전망 좋은 방』은 연애소설이다. 영국사회의 계층갈등과 가치관의 충돌, 물론 이러한 것들도 다루고 있지만 어쨌든 연애 이야기다.



희극이 존재하는 이유는

진실이 존재하는 이유하고 똑같다는 거 말이에요.

ㅡ 본문 p.144



유머러스하고 유쾌하다. 이탈리아를 여행 중인 주인공 루시와 사촌 샬럿. 그리고 전망이 좋지 않은 방을 보고 실망한 그녀들에게 '전망 좋은 방'을 양보하는 영국인, 에머슨 부자(父子). 루시는 조지(조지 에머슨)에게 키스를 당하고, 또 당한다 ㅡ 후의 키스는 시간적으로 나중의 일이지만. 루시와 전혀 인연의 끈이 없던 조지인데, 희한하게도 그들 부자를 루시 곁으로 끌어들인 것은 그녀의 약혼자 세실이다. 이로써 세실은 루저가 된다. 조지를 짓누르는 알 수 없는 비관주의(염세주의)는 루시를 만나고서 그를 내쳤다. 조용하고 강단 있어 보이는 조지의 갑작스런 프로포즈는 당당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지만 그의 행동은 그대로 솔직하고 담대한 처사였다. 『전망 좋은 방』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색조는 이유 없는 먹구름, 그리고 잿빛의 모순과 충돌한다. 루시 곁의 사람들은 아직 닥쳐오지도 않은 두려움에 두려워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건 모두 모순이며 그들 자체가 모순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샬럿(샬럿이 있기에 『전망 좋은 방』이 존재한다)의 이타심을 가장한 조악한 이기심, 허니처치 부인의 미운 오리의 기질 ㅡ 프레디는 오히려 순수하게 보일 지경이었으니(혹은 진실로 순수할지도).



사람이 서 있으면 그림자가 지죠. 햇빛을 가리지 않겠다고 이리저리 옮겨 봐야 소용없어요. 그림자도 계속 따라오니까요.

ㅡ 본문 p.186



다만 시인들이 이걸 좀 말해 줬으면 좋겠어. 사랑은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말이야. 몸 자체는 아니지만, 몸에 속하는 일이라는 걸.

ㅡ 본문 p.248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1Q84』처럼 현실과 그렇지 않은 것의 구분이 모호한(힘든) 세상(사회). 예의, 격식과 젊은이들의 가치관. 『1Q84』의 덴고 & 아오마메 커플과 엇비슷하게, 조지와 루시는 (진부하게 표현하자면)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이어져 있다. 여기서 작가는 기가 막힌 연민을 이끌어내는데, 오락가락하는 주체는 쉬이 정립되지 않다가 스스로 그 오락가락함을 단번에 정리해 버린다. '루저 세실' ㅡ 사실 그는 무시무시할 정도로 불쌍한 꼴이 되었으며 오히려 그에게서 연민을 느껴야만 할 것이다. 그는 정말 신사 그 자체이다 ㅡ 이 조지를 루시 옆으로 대령한 셈이 되었지만 어찌 보면 루시 스스로 그를 부른 것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결자해지인가.


▼ 이 소설로 만들어진 영화 『전망 좋은 방』의 주인공 루시, 헬레나 본햄 카터(helena bonham carter)는 『파이트 클럽(fight club)』의 말라 싱어, 『찰리와 초콜릿 공장(charlie and the chocolate factory)』의 주인공 꼬마 찰리 버켓의 엄마, 『스위니 토드(sweeney todd)』의 러벳,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의 붉은 여왕으로도 출연한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영화감독 팀 버튼(timothy william burton)이다. 나는 소설도, 영화도 권하는 바이다.



posted by 아잇